최근에 도파민 중독에 걸렸다.
어떤 작품에 집중하지 못하고, 보다가 말기를 반복하면서 뭐 하나에 빠지지 못하게 됐다. 억지로라도 앉혀서 집중하는 영화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교수님이 숙제를 내줬다.
도파민 중독 치료를 겸할 수 있어서 이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진짜 재밌었다.
소년의 시간은 작품성도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에 없던 이야기를 하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스토리 작법에 있어서는 매우 만족스러운 빌드업을 보여줬다.
소년의 시간 1화는 긴 빌드업을 거쳐 긴장감을 쌓았다.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한정된 정보로 점차 터진다? 터진다? 겁을 주는 작품들은 많다. 한국 드라마의 많은 작품이 이런 빌드업으로 시작한다.
용두사미에서 ‘용두’는 성공했다.
문제는 쌓인 긴장감을 결말에서 터트려야 하는데, 떡밥과 기대감만 실컷 던지다가 해결은 흐물흐물 실패할 때가 많다.
그렇게 용두‘사미’가 된다.
소년의 시간은 쌓아 올린 긴장감을 만족감 있는 전개로 풀어냈다.
그 방식 또한 등장인물의 미친 짓으로 전개되는 막장 드라마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경찰은 범인에게 사소한 질문으로 시작해 그 모순을 잡아냈다.
“당신은 남자입니까?”
“당신은 여자를 좋아합니까?”
“아빠가 있습니까?”
“이름이 뭡니까?”
언뜻 들어보면 바보 같은 질문으로 범인을 몰아세운 끝에 자백을 받아내는 장면은 각본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소년의 시간은 미국의 문제를 다뤘지만, 그 내용은 한국 사회과도 교집합이 많다.
가장 언급이 많이 된 인셀, 외모지상주의, 20대 80 법칙.
위 문제들은 인스타그램에서 비롯된 비교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인스타, 경쟁 문화 강국인 한국 역시 미국의 문제를 다른 형태로 받아들여, 젊은 세대 전체에 아래와 같은 정서가 퍼져 있다.
“그 정도 연봉으로 결혼하겠다고?”
“패션? 화장? 어차피 잘생기면 다 됨.”
“운동을 통해 너의 한계를 이겨내고, 성욕이나 연애 같은 쓸데없는 일에서 해탈하여, 돈과 자기관리에 투자해라. 돈이 최고다.”
이렇게 모아놓으면 전부 다른 사상같지만, 그 뿌리는 비슷하다.
소년의 시간에서도 은유적으로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설명하고 있다.
사랑이다.
몇 년 전에는 ‘사랑’이라는 키워드만 들어도 오글거리고, ‘사랑’이 천박한 농담이 된 시대가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는 가치는 점차 그 빛을 발하는 느낌이 든다.
사랑이 너무 흔해서 ‘사랑’이 오글거리는 시대는 지났다.
좋아요와 공유와 공감이 넘쳐나는 SNS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현대 시대는 가장 해체주의 적이며 개인화된 시대가 도래했다.
나도 마초이즘이라는 두건을 둘러쓴 냉소주의와 비관주의의 시대에 슬슬 지쳤다.
사랑이 천박한 농담이 된 시대는 언제쯤 지나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