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승보다 가치있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
처음이라 그래 심호흡해 / 20251116 이상하
발가락부터 손가락까지 절룩거리는 수확의 철
생애 최대의 황금어장 앞에서 덜덜거릴 때
위장까지 그물을 땡기게 하는 동료의 그 말
"처음이라 그래. 심호흡해"
바다를 입에 물고 나는 나비의 꿈에 젖어든다
어느새 벌써 일주일이나.
부족한 시로 늦게나마 티원의 월즈 쓰리핏이자 도란의 첫번째 우승, 그리고 페이커의 여섯번째 우승을 축하한다
셀 수 없이 많은 명장면이 있었고 중국 원딜의 전설 우지에게 결승전 mvp를 받은 구마유시에 대해 써볼까 하다가, 어쩌면 이번 티원의 우승에는 그보다도 더 빛나고 중요한 게 있지 않았나 뇌리에 스친다. 일주일이 지나도 계속 잔상에 남은 장면
그건 바로 인생 첫 월즈 결승전 마지막 5세트에서 누가봐도 긴장하고 떨어서 던지는 플레이가 나오던 티원의 탑 도란에게, 구마유시가 웃으면서 진정시켜 준 한마디.
"처음이라 그래"
그리고 반복된 도란의 스로잉 플레이에도 페이커가 침착하게 건네준 조언.
"괜찮고, 심호흡해"
당연하지만 지면 떨어지고 집에 가야하는 스포츠의 토너먼트 경기는 일반적으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준다. 티원과 8강에서 5세트까지 간 al의 미드 샹크스의 당시 표정을 보면 누가 봐도 안쓰러울 정도의 긴장이 드러난다.
티원은 수많은 국제전과 토너먼트 경험으로 인해 그런 긴장과 리스크를 어떻게 대처할지 세상 그 어느 팀보다도 잘 알고 실천하는 팀이었다. 이는 단순히 티원의 한 명 한 명이 경험많은 베테랑이어서 자기관리가 철저한 정도의 클래스가 아니라, 동료의 실수도 팀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생각하고 팀 전체에서 커버한다는 것.
이는 결승전 5세트의 도란 뿐만 아니라 사실 8강전 5세트의 오너의 문도도 마찬가지였다. 생애 처음으로 문도를 픽해서 스킬 설명을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경기를 시작한다니... 일반적으로는 프로 롤 경기에서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미친 소리인가 평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그 당시 티스코드의 대화를 보면 이미 라커룸에서 티원은 팀 전체적으로 문도가 5세트에서 중요할 것이라 예견했고, 페이커가 문도 정글을 먼저 픽해야 한다고 말하자 구마유시도 그 말에 찬동하고 오너는 인생 첫 픽임에도 팀적으로 수긍했다. 당연히 숙련도 따위는 제로니까 뒤뚱거리며 초반엔 아마추어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결국 중반이후 한타에선 문도가 선두에 서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오너와 도란의 5세트에 대해서만 말했지만 사실 페이커도 구마유시도 케리아도 마찬가지다. 모든 경기에서 최고의 모습만 보여주는 선수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 어떤 위대한 선수도 때로는 절룩거리기도 하고 소위 경기를 던지고 망친다는 스로잉 플레이가 나오기도 한다.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으니까.
사실 그리고 도란의 5세트에 대해서만 혹평하는 것도 그다지 공정하지 않다. 결승전 1세트 도란의 도베사와 4세트 도란의 도라가스는 그 누구도 쉽게 내려칠 수 없을만큼 승리하는데 공이 많았고 1세트 도베사는 그 경기의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만약 반대로 1세트와 5세트가 반대 순서였다면 그 임팩트로 도란이 훨씬 고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이렇게 경기중에 누구나 생기는 실수와 실패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를 단순히 실수 좀 하지 말라며 꾸짖고 비난해서 과연 개선될 수 있을까? 그보다는 구마유시와 페이커가 했듯이 처음이라 그럴 수 있다며 살짝 농담으로 웃어준다거나, 페이커가 심호흡을 하자며 자기의 정신수양 방법을 그 급박한 경기 중에도 공유하는 팀. 이러한 팀적인 멘탈 관리가 바로 세계대회를 우승하는 최고의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을 가르는 아주 조금의 디테일 차이가 아니었을까.
단순히 기량좋고 명성높은 스타 플레이어들을 모으는 것 만으로는 국제대회에서 우승하기 어렵다. 롤이든 축구든 야구든 스타 개인들만 주목받고 팀 스포츠에서 팀워크의 가치는 잘 흐려지는 듯한 세상이지만, 이번 티원의 3연속 월즈 우승, 쓰리핏보다 가치있고 빛나는 건 어쩌면 우승컵보다도 그러한 동료애와 팀워크가 아닐까.
Ps. 5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준우승에 그쳤지만 kt팀의 미드라이너이자 주장 비디디 곽보성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누가 봐도 명백히 객관적으로 경험과 전력이 부족한 신인을 여럿 데리고서, 비디디는 엄청난 미드캐리와 단합력으로 우승후보 1순위로 꼽히던 젠지를 4강전에서 이기고 팀을 준우승까지 이끌었다. 중국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나온 9.9점의 한시스러운 한줄 평이 그의 가슴에 남기를
"나비가 바다를 건널 수 없었는데, 누가 그걸 탓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