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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힐데 Feb 06. 2024

나의 해방일지

곧 설이다. 연휴 스트레스 없이 화이팅.

어릴 때부터 누구든지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간섭하고 잔소리하는 게 싫었다.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랐거나 부모님이 계셨어도 딱히 조언을 구할 수 없는 환경이었거나, 혹은 가정환경과 무관하게 어디 물어보기보단 혼자 결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이들이라면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걱정의 언어라며 하는 조언들이 나에게 오히려 상처가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요즘 많이 달라졌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문화나 정서는 우리와 가까울수록 개인적인 부분에 대한 조언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남아있는 듯하다. 명절 때만 되면 속을 뒤집어놓는 조언들로 인한 갈등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는 것이 아직 사회에 비슷한 고민과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타인의 조언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이유에 대해 조금 더 파헤쳐보자면, 조언을 들을 때 그 조언 자체로 화가 나거나 언짢기보다는, 충고를 들을 때마다 피어나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나의 마음을 힘들게 한다. 물론 이런 나의 생각들이 잘못되었다거나 고쳐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이런 내 마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나의 마음을 이해해야, 내 마음에 여유가 생길 수 있다.


나의 경우 이렇다. '어릴 적부터 힘들어도 결국 혼자 잘해왔는데, 남들이 속도 모르고 참견을 하면 나의 상황을 너무 쉽게 판단해 버리는 것 같아서 내 기분이 언짢구나.',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많았지'등의 생각을 하다가 내가 조언을 마주했을 때 화가 나는 근본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조언을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세상에는 나를 포함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의 가치관이 있다. 한 개인에게 완벽한 정답이 타인에게는 완전한 오답일 수도 있다. 조언은 말 그대로 조언일 뿐, 반드시 따르고 충족시켜야 하는 삶의 명령이 아니다. 어차피 모든 타인의 시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조언을 들을 때 흔히 내가 떠올렸던 생각은 다음과 같다.


'뭔지 몰라도 지금 내 삶의 어느 부분이 틀렸다는 거구나'

'나는 지금 지적을 당하고 있구나'

'이걸 어떻게 고쳐야 하지?'


하지만 조언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그 누구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 각자 자신이 믿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따르며 살아갈 뿐이다. 가족이든 지인이든 누군가가 조언을 할 때, 심지어 조언을 넘은 질책을 할 때라도, 수용하고 개선할 부분은 받아들이고 내 생각과 다르거나 부담스러운 부분은 그저 흘려보내면 어떨까 하는 한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조언을 들으면 피어나는 다음과 같은 여러 생각들, '왜 내가 네 가치관에 맞춰야 해?',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냥 들어주면 되지 왜 괜히 조언을 하지?'은 틀리지 않았다. 조언하는 어떤 누구도 나 대신 살 수 없고, 나보다 나의 상황을 잘 알 수 없고, 내 삶을 책임져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삶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구태여 내가 마음이 편하기 위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애쓰겠다는, 혹은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긍정적인 태도로 살아보라는 어쭙잖은 조언을 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내가 누군가를 위해 조언했던 때를 한 번 떠올려보니 그 또한 나에게는 꽤나 용기를 필요로 했던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 했듯, 충고 또한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일이며, 상대방의 불편한 기분을 감수하고라도 그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랄 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 좋은 의도가 아닌, 그저 상대의 기분을 안 좋게 하기 위한 '충고를 가장한 시비'를 건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땐 그들의 말이 나에게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하도록 깨끗한 마음으로 나의 기분을 지켜내려는 노력을 해본다. 운동이든 달달한 케이크든 상쾌한 바람이든 무엇이든, 빌런으로부터 멀어지려 노력한다. 물론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온전히 나의 것이니 말이다.


조언은 조언일 뿐,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나 만족시키지 못함으로 인해 자책하거나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이번주, 다가오는 설에는 스트레스 아닌 행복으로 보내길 소망하며


그래도 되도록이면 많이 웃는 나의 삶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래도 되도록이면 많이 웃는 여러분의 삶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도 우리의 삶이 온전히 우리의 것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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