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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진영 Feb 09. 2021

어서 와, 미국 생활은 처음이지?

캘리포니아 이방인의 하루하루

일상이었던 것들이 다 도전이다.
마켓에서 물건 사고 계산하기, 차에 기름 넣기, 주차하기, 신용카드 만들기, 온라인 쇼핑 주문하기.... 차 없이는 장 보러 가는 것도 힘들구나.  
- 2014.2.24 / 미국 생활 10일 차


2014년 2월 14일. 38년간의 익숙할 대로 익숙한 서울 살이를 접고, 용감하게 새로운 곳에서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이곳, 미국 캘리포니아를 밟은 날이다. 오늘은 2021년 2월 8일. 내가 이곳에서 산지도 일수로는 2,551일, 햇수로 7년을 일주일 앞두고 있다. 초반 2-3년의 생활은 38년간 축적된 감각과 경험을 뒤엎는 날들의 연속이다.


38년 차 서울 촌년이 무빙 하는 캘리포니안으로.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38년을 서울에서만 산 진짜 서울 촌년. 어렸을 적, 친구들이 명절이나 방학이면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간다고 하면 그게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대학 때도 방학이면 세상 쿨하게 고향으로 떠나는 친구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결혼 후에도 11년 동안 딱 한번, 동네 안에서 이사, 그것도 포장이사를 했다. 그렇다 보니 이사에 대한 힘들고 어려운 기억이 없었다.

미국에 와서는 샌디에고 San Diego에서 1년 반, 로스엔젤레스 Los Angeles County와 샌버나르디노 San Bernardino County 경계에서 2년 3개월, 현재는 벤츄라 Ventura County에서 3년 3개월째 살고 있다. 한국으로 치자면 부산에서 살다가 구리/남양주쯤에서, 그리고 김포에서 살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동 거리도 만만치 않지만, 사람의 품삯이 제일 비싼 미국에서 포장이사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이삿짐을 직접 싸고, 이사 트럭을 빌려 짐을 싯고 운전을 해서 새로 살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이사 트럭을 반납하기까지 모든 것을 직접 해야만 한다. 말도 잘 안 통한다는 불안감에 주변 환경도 계속 바뀌는 스트레스가 이전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날 것의 느낌이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한 동네에서 사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점?


신분이 어떻게 되세요?

신분이 어떻게 되냐고요? 아니 무슨 신분제도가 남아있는 사회도 아니고 무슨 질문이 이럴까 싶은... 미국 사회에서 이런 질문은 매우 무례한 질문인데, 샌디에이고 살이 1년 반 동안 나는 이 질문을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과정을 같이 듣는 한국분들에게 종종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단기여행이 아닌 장기 거주 비자 취득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어떤 비자(Visa)로 들어왔는가에 따라 체류 신분(Status)이 결정되는데, 이 신분에 따라 미국 내에서 경제활동 유무가 판가름 난다. 가장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것은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인데, 이 과정과 방법이 또한 만만치 않다. 반면 어떤 방식으로든 미국에 정착해 살고 싶은 이주민들;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 미국 지사로 파견된 주재원 가족 등 임시 체류자부터 난민들에 이르기까지의 합법 혹은 불법 체류자가 많고, 내가 만난 대부분의 한국인들도 미국에서 정착하고 싶어 했다. 미국 살이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다는 점과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런 무례한 질문도 통용되는 게 아니었을까 한다.

나는 유학생 동반비자(F2)를 받고 들어왔다. 학생비자(F1)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학교에 등록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재정적으로 안정적인지를, 공부만(미국에서 돈을 벌거나, 눌러앉을 생각 따위는 절대 없는) 열심히 해서 학위를 취득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 것인가를 증명해야 한다. F2비자는 F1의 배우자나 가족이면 어렵지 않게 발급되는데, 그 대신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 그냥 돈만 쓰면서 미국 경제에 기여하라는 의미인 듯. 유학생 동반자(F2)로 들어와서 천. 운. 을. 타. 고. 난. 덕. 에 영주권을 얻어 일을 하고 세금보고를 하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어느 때보다도 어리숙하고 긴장된,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말을 잘하고 싶은 욕심

초기 미국 생활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말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었다. 물론 지금도 말을 잘하고 싶다. 그간의 삶이 영어와는 담을 쌓아온지라, 외국생활 경험은 더더욱 없기 때문에 영어가 능숙할 리 없었다. '처음' 동네 마켓으로 물건을 사러 갔을 때였다. 계산대의 점원이 나에게 뭐라 뭐라 물었다. 알아듣지 못한 나는 "Excuse me?"라고 되묻고, 점원이 두 차례 뭐라 뭐라 되풀이했으나 나는 알아듣질 못했다. 결국 점원은 "Never mind... NEXT!!" 하며 나를 보냈다. 말을 못 알아들어 무시당하는'것 같은' 느낌이 아주 새로웠다. 지금 생각하면 점원의 질문은 두 가지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여기 멤버십 카드 있나요?" 아니면 "플라스틱 백에 넣어줄까요? 아니면 종이백에 줄까요?" 그러나 마켓을 처음 경험한 내가, 경험에서 오는 눈치도 없으니, 번개 같은 속도로 느껴지는 영어를 어찌 알아들었을쏘냐...

미국에서 영어를 못해 벌어지는 상황은 초기 이민자들이 겪는 흔하디 흔한 언어로 인한 차별로 이어진다. 말이 어리숙하다고 생각까지 어리숙한 것이 아님에도, 그런 취급을 받곤 한다. 7년의 경험으로 얻은 것은, 언어로 인한 차별은 원어민같이 능숙한 언어의 습득으로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나는 결코 원어민처럼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나 이를 넘어서는 방법은 반드시 있다. 사람 사는 데가 다 비슷비슷한지라, 말의 어눌함은 태도와 눈빛의 단호함과 예의바름, 그리고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명확하다면, 짧은 영어도 다 통하고 존중받는다.


가장 큰 위로가 되어준 샌디에고 햇볕과 하늘

한국을 떠나 타지로 온 나를 위해, 친구들이 멋진 제안을 해주었다. 서울에 사는 친구, 콜롬비아 보고타에 사는 친구와 함께 블로그를 하나 만들었다. 매일 각자의 위치에서 하늘을 찍어 올리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매일 멍 때리며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위로도 컸다. 샌디에고의 날씨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한 겨울에도 햇볕을 쐬고 있으면 잠이 솔솔 올 정도로 따뜻했다. 한국을 떠날 때 비타민D가 심하게 부족하다고 해서 주사까지 맞고 왔는데, 여기 햇볕을 쬐고 있을 때면 마냥 기분이 좋아졌다. 비타민D가 내 몸 구석구석 채워지는 느낌, 행복했다. 그러다가 문득 시간이 멈춘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샌디에고의 하늘


사람 사는 데가 다 비슷하지 않겠어?

이렇게 하루하루를 주어진 미션을 해결하듯 지내다 보니 어느덧 한참의 시간이 흘렀고, 요즘 들어 미국에서의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7년이 '제가 아직 잘 몰라서요'라고 하기엔, 나름의 긴 시간이 아닌가? 또한 내가 미국 사회를 알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노력해왔는가를 자문해 보면 수동적인 부분도 꽤 많았다.

남편이 앞으로의 생은 미국에서 살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내가 가졌던 마음가짐을 떠올려 본다. 삶이란 어디서 어떻게 살든 매 순간의 선택과 도전의 연속이고, 전혀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는 이 경험이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라면 이왕에 즐겁고 행복하게 받아들이자는 그 다짐. 나는 오늘, 미국 살이를 결심한 당시의 초심을 되새기며 소중하고 아름다운 내 삶에 새로운 도전 하나를 추가한다. 나의 마음, 나의 생각, 나의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나눠보기로. 미국 살이 10년쯤 되면 더 멋진 나로 성장해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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