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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경숙 Aug 04. 2020

이런 휴가 어때요?

2020  여름 호텔방콕독서여행 다녀왔어요.

코로나19가 가시지 않았는데 웬 해외 여행이냐고요?


여름휴가길을 떠나왔습니다. 아픈 엄마도 집안일도 다 접어두고. 떠나는 순간까지 염려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거동이 불편해지신후로 한번도 떠나지 못했던 엄마곁을 떠나자니 출발 몇일전부터 분주했습니다. 용변부터 약먹이기, 식사, 간식, 센터등하원까지 식구들에게 인수인계하고 실습까지 시켰습니다. 늘 보조자로 애써주던 식구들이지만 막상 자기손으로 모든 과정을 해보자니 손에 익지않아 안절부절입니다. 엄마의 얼굴 표정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직장에서 하계휴가 계획을 제출하라고 할 때부터 수없이 망설였습니다. 거동이 어려운 엄마를 모시고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에 엄두를 못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근교나 시내호텔 호캉스로 하룻밤 바람이나 쏘이고 와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내 고민을 들은 둘째 딸이 불쑥 "엄마 혼자 다녀와!"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엄마를 놓고 떠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둘째가 "그동안 할머니 돌보느라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해볼테니 이삼일이라도 푹 쉬고와"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냥 혼자 훌쩍 떠나고 싶다는 속마음이 들킨 것도 같았지요. '아무것도 안하고 바닷가 호텔에서 책이나 읽으며 3일을 보내야겠다' 하고 강릉의 하계휴양소 호텔을 신청하여 배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일이 커졌습니다. 8년째 독서토론 모임을 가지는 친구들이 있는데 나의 휴가계획을 이야기했더니 함께 가면 어떨까?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마침 이번달에는 코로나로 미뤄졌던 일정때문에 두 권을 토론해야해서 장시간이 필요한데 함께 자며 마라톤 토론을 하자는 것입니다. 모두들 식구들 챙기며 사는 중년여인들이라 우리끼리 떠나는 독서토론 여행에 같이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책을 넣은 트렁크를 끌고 우리는 강릉으로 떠나왔습니다.


애초부터 관광은 우리계획에 없었습니다. 호텔에 도착하여 식사를 해결하고 첫날밤부터 독서토론 마라톤을 출발했습니다. 밤늦도록까지 토론과 일상이야기를 이어가다 잠이들고, 아침 호텔부페조식을 마치고 객실로 올라와 커피를 마시며 또 토론삼매경에 빠졌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4시간씩 모여 이야기할 때와는 달리 우리는 의식 깊숙이 감추어져 있던 속 마음들을 끌어냈습니다. 책이야기에서 출발해 서로의 마음을 교류하고 내면을 확대해나갔습니다. 칙센트 미하이가 말한 '몰입의 순간'이 바로 이런 상태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이틀에 걸친 호텔방콕독서휴가는 우리 세명을 고양시켰고 지적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보지 못하던 자신의 참 모습을 마주 앉은 친구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라앉지않는 희열을 애써 누르며 토론을 마치고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쏴아 쏴아 밀려오는 물결따라 모래사장에서 뛰어 춤추며 니체가 말한 '아이'의 상태로 되는 순간을 상상했습니다.


2020 방콕 독서휴가에 우리와 동행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의욕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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