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24색 크레파스로 그린 밤하늘은 까맣기만 하다. 48색이면 달라질까? 96색 192색이 되어도 밤하늘은 그냥 ‘검정’이다. 우주가 정말 까매서가 아니다. 인간이 그 이상을 보지 못하니, 아이는 보이는 대로 칠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보는 가시광선은 빛의 파장 중 400~700 나노미터의 극히 일부 구간이다. 빨강색 바깥의 적외선, 보라색 바깥의 자외선부터는 볼 수 없다. 세상이 빨주노초파남보로 보이는 건 인간이 그 좁은 구간만 감지할 수 있는 생명체로 진화했기 때문이지, 실제로 세상의 색채가 그러하기 때문은 아니다.
언어는 어떤가? 언어가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해 낼 수 있을까? 24색 크레파스가 세상을 다 그려낼 수 없듯이, 한글 자모와 알파벳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제아무리 현란한 문사(文士)도, 천재 물리학자도(수식도 언어이므로) ‘언어’라는 수단을 쓰는 한 그 역시 아이의 운명이다. 물론 언어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제법 유용한 그림을 그려주기는 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그려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불교의 고승들은 말로 도달할 수 없는 ‘언어도단’의 세계를, 크리스트교의 전통은 이성을 넘어서는 영성의 세계를 지향해 왔다. 언어와 이성에 갇히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니 귀 있는 자 들을진저,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말할 수 없다고 허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