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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환 Jun 30. 2023

[오늘의 私설] 2023년 1학기 성적이 나왔다


 마치, 화투의 섰다 패를 쪼는 마음으로 2023년 1학기 성적을 확인한다.


 한 학기 열심히도 달려 왔다. 나이 오십에 대학교 3학년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방금 읽은 것도 돌아서면 잊는다던 아버지 말씀이 사무쳤다. 체력은 어찌나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지, 허리를 펴고 앉기 힘들어 접힌 배에는 지방 꽉 찼다.      


 일곱 과목, 21학점이었다. 교양 라틴어를 제외하면 제1전공 심리학이 세 과목, 제2전공 신학이 세 과목이다. 스마트폰 화면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리면서 성적을 확인한다. 두근두근, 한 학기가 빠르게 스쳐간다.         


 먼저 <라틴어 1>. 뭔가 있어 보여 신청했으나 만만치 않았다. 주격 속격 여격 대격 탈격 호격 1인칭 2인칭 3인칭 단수 복수 남성 여성 중성... 수많은 변화를 암기해야 하는 부담이 컸지만 그래도 일상 속 라틴어를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audio가 ‘듣다’, video가 ‘보다’라는 동사다). 어느  명동성당 새벽미사에서는 내 앞의 외국인에게 신부님이 성체를 내밀며 ‘르푸스 크리스티(corpus christi)’라 하시 알아들었다! corpus는 ‘몸’, chisti는 christus속격으로 ‘그리스도의’라는 뜻이니 corpus christi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것이다. 성적은 A0. 기말고사를 망친 게 아쉽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음은 <문화심리학>. 사회심리학의 하위 분야로 문화가 인간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문화권에 따라 사람들이 어떤 심리적 특성을 보이는지 다룬다. 한국인의 심리를 좌우하는 문화적 특성으로 체면문화, 외모지상주의, 노력지상주의를 흥미롭게 배웠다. 특히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들일수록 비도덕적 행위를 하는 특성이 있다는 심리 실험의 결과가 충격적. 외모지상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의 도덕성 지표가 OECD 최하위권이라는 통계도 의미심장하다. A+.


 <임상심리학>. 심리학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영역이다. 심리평가와 심리치료, 심리상담법두루 다룬다. 직업과 관련된 과목이다 보니 수강생의 열의도 확실히 높았다. 나도 제법 열심히 공부했지만 성적은 아쉬웠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모두 객관식으로 출제됐는데, 문구 하나라도 놓치면 틀리는 객관식이 너무 버거웠다. 다들 답안지를 내고 나갈 때까지 끙끙댔으나 신통치가 않다. 그래도 현장에서 심리학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두루 배웠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 성적은 B+.     


 <인적요인과 산업현장 안전관리>.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님과 한국 항공대 교수님의 콜라보 수업이다. 수강생도 두 학교 학생들이 섞여 있다. 유일하게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는데, 중간고사까지는 심리학과 교수님이 산업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심리적 오류들을 강의하고, 이후로는 항공대 교수님께서 실제 산업현장의 안전 관련 이슈들을 강의하셨다. 늘상 뉴스로만 보던 산업재해에 관하여 발표수업을 준비하면서 그 심각성을 인식하게 된 점이 큰 소득이다. A+.

     

 <텍스트와 해석 101>. 신학과 전공필수 중 하나다. 신학의 하위 영역인 '성서신학'의 입문과목인데, 중간고사 전까지는 구약을, 이후로는 신약을 다뤘다. 물론 성서 전반을 훑을 수는 없고, 성서를 읽는 관점 혹은 방법론을 배운다. 매주 논문을 읽고 쪽글을 내야 하는 과제가 빡빡하면서도 유익하다. 구약을 담당하신 교수님이 첫 시간에 슬쩍 불러 '저랑 동갑이시던데 연구실로 한 번 찾아오세요' 관심을 보여주셨다. 설마 나이값을 후하게 쳐 주신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성적은 A+.    

 

 <삶과 죽음 사이: 의료생명윤리>. 실천신학에 속하는 과목이다. 중간고사까지는 생명윤리를 바라보는 여러 개념을 배우고, 이후에는 말기환자, 애도, 유전자 치료, 대리모와 같이 구체적인 생명윤리의 문제들에 관하여 발표와 토론을 병행했다. 내가 속한 조의 주제는 '애도'였는데,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에서 보인 교회의 몰애도적 태도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발표 전날에는 하도 마음이 아파서 혼자 시청앞의 분향소를 찾았다가 유가족 대표님과 말씀을 나누기도.  A+.

     

 <신앙과 정신건강>. 이번 학기 가장 흥미로웠던 과목이다. 심리상담소를 운영중인 교수님의 다양한 사례들이 흥미로웠다. ‘心神일원론’을 구축하려는 내게 가장 유익했던 과목. 다들 조용한 와중에 혼자 신이 나서 온갖 질문을 던지고, 거의 교수님과 일대일 수업을 하다시피 했다.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의 이론을 공부하며 심리와 영성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을 더듬을 때마다 엉치가 찌릿찌릿 했다. 기대했던 대로 성적은 A+.

 

 이번 학기까지 교양 이외에 제1전공 심리학을 7과목, 제2전공 신학을 9과목 들었다. 심리학은 A+도 A0도 B+도 있는데 신학은 9과목 모두 A+다. 어느 쪽이 제1전공인지 모를 지경이다. '가톨릭 목사님'이라도 되려나? 하지만 성적은 성적일 뿐, 매 시간 머리가 꽉 찬 느낌으로 강의실을 나서는 뿌듯함은 심리학이나 신학이나 매한가지다. 배움과 성장이 어찌 20대의 전유물일까. 그들의 짱짱한 에너지 속에서 버텨내고 성장해 낸 내가 장하여 나에게 맥주를 한 잔 산다. 라틴어 배운 티를 내며, 건배! per aspera, ad astra(고난을 거쳐 별을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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