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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환 Jul 13. 2023

[心神일원론] 우주는 '왜' 만들어졌냐는 질문에 대하여


 종교와 과학의 역할 분담을 주장하는 진술이 있다. ‘과학은 우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할 수는 있지만, 우주가 왜 만들어졌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왜’에 대한 답은 과학이 할 수 없으며, 이것이야말로 종교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과학에 밀리지 않는, 어쩌면 과학을 능가하는 종교의 위상을 드러내는 것 같다. 예컨대 크리스트교는 이 질문을 받아,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는 신의 사랑 때문이라고 말한다. 종교는 과학 만능 사회에서도 연명의 가치를 얻는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왜’라는 질문의 속성 때문이다.       


 우주까지 갈 것도 없다. 여기, 작은 모래알갱이가 있다고 하자. ‘이 모래알갱이는 왜 존재하는가?’ 이 질문이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보다 쉬울 리 없다. ‘왜’라는 질문의 무게는 대상의 크기에 좌우되지 않는다. ‘왜 존재하는가’에는 다른 의문사를 이용하는, 이를테면 ‘어떻게 존재하는가’와는 달리 ‘목적’에 대한 탐색이 함축되어 있다.      


 모래가 ‘어떻게’ 존재하는지는 아이들도 안다. 바윗돌 깨드려 돌덩이, 돌덩이 깨뜨려 돌멩이... 그 끝에 모래알이 있다. ‘언제’ 또는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도 비슷하다. 하지만 ‘왜 존재하는가’, 다시말해 ‘모래알이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여기에는 인간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목적’이란 단어를 분해하면 두 가지가 나온다. 하나는 ‘결과’이고 또 하나는 ‘바람’이다. 즉 목적이란 ‘어떠한 바람을 담은 결과’다. 그래서 ‘결과론적 윤리’를 다른 말로 ‘목적론적 윤리’라고도 부른다.


 '결과'는 인과율의 한 축이므로 삼라만상에 늘상 나타난다. 태양의 고도가 높아진 결과 기온이 높아지고, 수증기가 응결된 결과 비가 내리는 식이다. 하지만 ‘바람’은 인간의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바람’은 철저하게 인간 입장에서의 바람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바람은, 때로는 인간 아닌 다른 존재의 바람과 일치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야 할 필연성은 없다. 예컨대 전쟁 아닌 평화가 인간의 바람일 수 있으나, 인간의 시체를 먹고 살 들개와 승냥이에게는 종전(終戰)이 반갑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인간의 바람 또는 이에 대한 걱정이 인간 아닌 다른 존재들에게는 완전히 무관심한 것일 수도 있다. 설령 지구의 기온이 높아져 인류가 멸종한들 토성과 목성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인류가 싹 사라지고 난 후의 지구는 어떤 생물 종들에게는 낙원일  있다.

     

 이처럼 ‘목적’이라는 단어는 철저하게 인간의 선호를 전제로 한다. 인간은 밥을 먹기 위해 음식을 만든다. 그리고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을 한다. 물론 그것만이 결혼의 목적은 아니겠으나 결혼에 관여되는 다양한 바람들, 이를테면 사랑, 위안, 부모님 잔소리로부터의 해방도 결국은 인간으로서의 목적들이다. 이처럼 다른 의문사가 객관적이라면 ‘왜’라는 의문사는 주관적이며, 인간적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그러므로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 ‘모래알은 왜 존재하는가’라고 묻고 그에 대한 답을 생각하는 순간, 거기에는 인간으로서의 성향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신이 세상을 사랑하셔서’라는 종교적 답변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인간이 신이라는 존재를 지고(至高)의 존재로 여기는 이상, 그리고 인간이 사랑이라는 가치를 가장 높이 여기는 이상, 신이 우주를 만든 이유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은 그것 외에 있을 수 없다. 만약 인간이 식도락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면, 우주는 신의 식탁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은 세상이 만들어진 이유를 말할 수 없다’는 진술은 맞는 말이기는 하나, 종교에 대단한 지위를 부여할 만한 얘기도 아니다. 어차피 인간이 말할 수 있는 '이유'라는 것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사고와 감각, 그리고 희로애락의 범주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목적을 인간은 상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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