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민기 선생님을 추모합니다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기에 드러나고 감추기에 더 빛나는 것들이 있다. '톤즈의 성자'로 알려진 고 이태석 신부님이나, 낯선 이국에서 평생을 나환자와 함께 하셨던 마리안느, 마가렛 간호사님의 행적이 그러하다. 지난 21일 세상을 떠나신 김민기 님의 삶도 우리나라의 현대사에 그 못지 않은 '역설의 기억'으로 남았다.
지금 학생들은 김민기 선생님을 모른다. 강의실에서 수강생들에게 '아침이슬'을 짐짓 불러 보았지만 노래를 알아서 쿡쿡 웃는 표정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그들과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에게 아침이슬은 군사독재에 맞선 서로를 다독였던 연대와 용기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운동권'이라는 말로는 김민기 선생님을 담을 수 없을 뿐더러 맞지도 않는다.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의 노래가 엄혹한 시절 저항의 공간에서 널리 불렸던 것은 노래에 담긴 보편적 정서 때문이지 그가 무언가를 촉구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김민기 노래의 감동은 주변을, 그리고 자신을 나지막이 살피는 그의 시선에서 온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아침이슬'과 '상록수' 외에도 김민기 선생님의 앨범을 찬찬히 들어보면 한곡 한곡이 다 그러하다. 김민기 님 특유의 저음에 인간의 깊은 슬픔,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시선과 서사가 잔잔하게 흐른다.
'아침이슬'에 멀뚱하던 녀석들에게 <서울로 가는 길> 이야기를 해 주었다. "생각해 보아라, 영화에서 보았음직한 1970년대 그 가난한 어느 시골 마을, 혼자서 병든 부모님을 봉양하던 누군가가 돈을 벌어 약을 구하기 위해 서울로 떠나는 길, 아픈 부모님을 두고 서울로 가야 하는 길..."
이야기를 마치고 노래를 들려 준다. 그저 노트북으로 유튜브 음원을 틀어 주었을 뿐이지만, 김민기 님의 목소리가 스며든 녀석들의 표정은 그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 부모 병들어 누우신지 삼 년에
뒷산에 약초뿌리 모두 캐어 드렸지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병드신 부모 모실까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
- <서울로 가는 길> 1절
김민기의 노래란 그런 것이다. 2000년대 중반에 태어나 부모님 봉양은 커녕, 오늘 아침에도 반찬투정을 하며 나왔을 녀석들이 노래를 들으며 가만히 눈을 감는다. 누군가는 청소년이고 누군가는 성인이며, 누군가는 학생이고 누군가는 직장인이겠지만 인간이기에 공유하는 깊은 곳. 김민기의 노래는 바로 거기에서 언제까지나 낮게 울릴 것이다.
https://youtu.be/Tc2cDLOGdHc?si=y35pQIk0kB7JwX7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