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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Mar 08. 2024

"그래도 어머니잖아요."

인간의 본질

간암 말기 진단을 받은 환자가 응급실로 입원했다. 

검노랑의 얼굴빛을 보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의료진에서 의뢰한 환자임을 알 수 있었다. 

(간질환에 의해 유발되는 증상 중 하나가 황달이며 피부와 눈의 흰자위까지 노랗게 보인다.)

당장 내일 사망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중증이었다.    

 

30년 전까지 매일 맥주를 10병씩 마셨다. 

이후 음주량을 줄였고 10년 전부터는 금주하고 있다. 

환자의 진술이지만 금주를 했다는 말에는 신뢰 가지 않는다.    

 

환자는 아들에게 연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30년 간 왕래가 없었다. 

4~5년 전부터 동거인과 함께 생활했고 지금도 동거인이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다. 

동거인조차 환자의 아들을 만나 본 적이 없고 아들도 동거인의 존재를 모른다. 

설득 끝에 아들의 연락처를 확인했다.      


“○○○병원 사회복지팀입니다.”

“○○님 아들이 맞나요?”     


머뭇거리는 모습이 상상된다. 

잠시 어머니의 이름을 기억에서 잊고 있었을 수도 있다.    

  

“네…. 맞습니다.”     


“평소 왕래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매우 위중한 상태이기에 연락드렸습니다.”

“내원하셔서 환자와 의사를 만나보시겠습니까?”

“오랜 세월이 지났고 어떤 사정인지 알지 못하기에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병원비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전화에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가족과 상의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

.

.

“병원에 한번 가보겠습니다.”     


병원에 와보겠다는 아들의 말에 또 다른 걱정이 생긴다. 

아들은 동거인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동거인은 아들과 만나는 것이 불편할 수 있다. 

그나마 동거인이 보살펴주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고 지금의 치료를 받고 있다.      


“오늘 아들이 병원에 오기로 했습니다.”

“아들을 만나는 것이 불편하시면 병실 방문 전 미리 연락드리겠습니다.”     


“한 번도 보거나 연락해 본 적은 없지만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불편하지 않을 것 같다는 동거인은 잠시 뒤 병원에서 사라져 버렸다. 

내심 불편했던 모양이다. 

갑작스럽게 동거인이 사라지자, 몸을 가누기도 힘든 환자 혼자 남게 되었다.

병동은 큰 난리가 났지만, 동거인은 곧 병원으로 돌아왔다.      


병원에 도착한 아들이 곧바로 병실로 가버려 동거인과 마주쳤다. 

다행히 서로 어색했을 뿐 큰 문제는 없었다. 


아들의 표정은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침착했다.     

 

중학교 시절 어머니는 가출했고 어른들의 일이라 어떤 사정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갈등도 아니고 애착도 아닌 소원한 관계다. 


아들은 병원의 연락을 받고 넌지시 아버지의 마음을 떠봤다고 한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오면 어떻게 하나요?”


“그거 잘된 일이지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했으면 내가 심장병까지 생겼겠냐.”     


아들은 어머니의 상황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동거인과 아들이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그동안 동거인이 환자를 보살펴 왔음을 강조했다. 

다행히 아들은 동거인에 대한 적개심 같은 것은 없었다.      


환자가 사망하면 장례는 아들이 치르겠다고 한다. 

빈소는 준비하지 않더라도 화장 후 납골당 안치까지 생각하고 있다.     

 

고민하지 않는 모습이 궁금했다.      


"오랜 세월 왕래 없이 지내왔는데 장례까지 치르겠다는 이유가 있나요?"

.

.

.

"그래도 어머니잖아요."     


내가 덧붙일 말은 없었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본질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다음에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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