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과자 베베.

베베 이야기.

by 김커피

90년대 모 기업에서 만든 이 과자는 등장부터 신선했다. 이국적으로 생긴 사이버 아기 캐릭터가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한 것처럼 여럿 나와 흔들흔들 춤을 추며 “아기 꺼야 아기 꺼 어른들은 안 돼용~” 노래한다. 오로지 아기들을 위한 과자여서 무방부제, 무색소, 영양강화에 도움을 주는 밀가루와 유기농 밀가루 등의 좋은 원료로 쓰고, 엄마 마음으로 만들었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광고했다. 이 얼마나 전국에 계신 엄마들과 아이들을 자극하는 광고인가!


나 역시 자극받은 이들 중의 하나였다. 그 과자가 먹고 싶었다. 노란색 직사각형 상자에 파란색 귀여운 글씨체로 이름이 쓰여 있는 그 과자가 너무 먹고 싶었다. 고급 과자 같은 느낌이 드는데 대체 가격은 얼마나 할까 궁금해서 동네 슈퍼로 갔다. 소심해서 주인아저씨께 물어보지도 못하고 가게를 빙 둘러보다가 그 과자를 발견했다. 얼른 과자 상자를 들고 가격을 확인했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내 머릿속에 가격표는 1,200원이라고 찍혀 있었다. 세상에 1,200원이라니! 500원짜리 봉지 과자도 겨우 사 먹는데... 충격적이었다.


슈퍼에서 과자의 실물을 보고 온 나는 절실하게 그 과자가 먹고 싶었다. 온통 아기 과자 생각뿐이라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마침 TV에서 광고가 나오는 것이다. 타이밍 무엇이었나. 나는 갑자기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할아버지께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 나 1,200원만 주면 안 돼요?”

할아버지는 그렇게나 큰돈이 왜 필요한지를 물으셨고,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새로 나온 저 과자가 너무 먹고 싶어요. 슈퍼에 가서 보니까 1,200원이래요.”


광고를 잠시 보던 할아버지는 식사를 끝내시고는 장롱 안에서 꺼낸 지갑을 털어 1,200원을 주셨다. 두 손으로 1,200원을 받아 든 나는 이 큰돈을 주신 할아버지께 너무 감격한 나머지 눈물까지 그렁그렁하며 “감사합니다!” 외치고 부리나케 슈퍼로 뛰어갔다.


언박싱. 나의 첫 언박싱은 이 과자의 포장을 뜯을 때였다. 노란 상자 안에 봉지가 있었고, 그 봉지를 뜯어보니 좋은 냄새가 먼저 나를 반겼다. 그렇게 과자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내가 평소 좋아하던 자극적인 맛의 과자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맛과 식감이길래 조금 놀랐다. 맛이 있긴 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내 입맛엔 그다지 맞지 않았고, 그럴수록 할아버지께 죄송했다.

내가 아기가 아니라서(혹은 아기 입맛이 아니라서) 그런가 봐...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내 방에 오셔서는 맛있냐고 물으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괜히 죄송해서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엄~청 맛있어요!”


이후로 광고에 홀려 과자를 사 먹는 일은 없었고, 그런 유혹으로 할아버지께 귀한 돈을 요구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는 이유는 손녀가 먹고 싶다는 과자를 위해 지갑을 털어 준 할아버지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두 가지의 맛으로 기억되기 때문인 것 같다.



언박싱. 나의 첫 언박싱은 이 과자의 포장을 뜯을 때였다. 노란 상자 안에 봉지가 있었고, 그 봉지를 뜯어보니 좋은 냄새가 먼저 나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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