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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레인 Aug 28. 2021

선의를 베푼다는 것

유학생활 중 아무 뜻 없이 받는 도움들

학교 사람들에게 아무 의도 없는 선의를 종종 받았다. 처음에는 의외였고, 어색했다. 왜냐면 직장에서는 정말 몇몇을 제외하고는 필요에 의해 관계가 맺어졌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일을 부탁하거나, 일을 넘기거나, 자료를 요청하거나, 계약에 관해서 물어보거나 등등. 그래서 '한번 마주치지도 않은 나에게 이런 도움을!?'라는 의아함이 잠시 들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선뜻 베풀어 준 선의들이 당시 나에게 꼭 필요했고, 절실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1. SOP 때문에 쩔쩔매고 있을 때, 학교 선배가 나를 대신해 학교 선배의 미국인 친구에게 부탁해 교정을 봐주었다. 

2. 내가 푼 숙제가 확실한가 물음표만 가득할 때, 자기가 푼 정답을 공유해주었다. 

3. 스터디 그룹을 찾으려고 랜덤 이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이 오지 않아서 시무룩해있는데, 같은 코호트 애가 그룹 메신저로 나를 초대해주면서 구제되었다. 

4. 여러번 갈아타야 하는 루트에서 라이드를 해줬다. 

5. 어려운 수업을 들어야 해서 걱정되었는데, 이것 저것 본인이 가진 소스를 보내주면서 필요한게 있으면 언제든지 이메일 하라고 했다. 

6. 커리어 상 궁금한것이 생겨 줌 하자고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아주 정중한 이메일을 보냈는데, 40분이나 시간을 내주었다. 

7. 줌에서 처음 만난 사람인데, 본인도 박사과정을 끝낸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이메일을 남겨주었다. 

8. 코로나라서 힘들지 않느냐, 살아 있냐, 가끔 문득 안부를 물어봐주었다. 하루하루 한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나에게 지금 학교 안그만 두는 걸로도 잘하고 있다, 하여 위로 받았다. 

9. 아프다고 했더니 문앞까지 음식을 가져다줄까 물어봤던 동기가 있었다. 


코로나라서 서로가 어려우리라 짐작하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그 친구들도 지난날 받았던 것들을 되돌려주는 것일까? 읽씹 당하고, 까이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아주 조금만 용기를 내어 다가가면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 나에게 고마운 선의를 베풀어 주었다. 몇 번 이런 경험을 하다 보니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나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게 누구이든 어떤 목적에서든 상관없이 말이다.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오히려 감사한 일이다. 받아본 사람이 베풀 줄도 안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내 좋은 오지랖이 누군가에게는 그 날, 그 시간에 꼭 필요한 것일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드니 다가오는 타인을 우선 의심하고, 경계심을 품었던 지난 내 모습들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례한 사람은 그래도 제외하고 싶다. 아직은 그 정도로 오픈된 사람이 아니다ㅋ).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내가 보여준 선의들은 (작지만) 아이들이 길에서 지나가면 비켜서서 기다려주고 (집 근처에 어린이집이 있다), 천천히 오는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고 기다려주는 정도였지만 앞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오지랖을 부릴 예정이다. 누군가의 선의가 또 다른 선의를 낳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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