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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기 Jul 21. 2019

임연수 구이

나의 첫 푸드 에세이


2019년 7월 21일



문장만으로 군침이 돌게 하는 푸드 에세이를 좋아한다. 푸드 에세이는 분명 작가들이 잔뜩 신이 나서 쓴 것만 같다. 덕분에 평범한 야채도 다시 보게 되고, 낯선 식감도 상상해보게 된다. 여행기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설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식재료와 요리를 맛깔나게 묘사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대개 그들은 미식가이거나 적어도 요리하는 것을 즐긴다. 그렇게 애정이 듬뿍 담긴 글을 읽고 나면 나도 음식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어 지는데, 늘 망설여진다. 식사 다운 것을 먹고살지 않기 때문이다.


내 점심시간은 오후 1시부터 2시다. 유튜브의 심슨 클립을 틀어 놓고 GS 편의점의 삼각 김밥을 먹곤 하는데, 고추장이 들어간 것을 선호한다. 삼각 김밥은 먹고 나면 입에서 시큼한 맛이 나는 것 같다. 가끔 단백질을 먹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면, 닭가슴살 소시지나 감동란을 사 먹는다. 편의점 샌드위치는 왜 축축할까. 요즘 진라면이 맛있어졌다. 가장 좋아하는 컵라면은 진짬뽕 소컵이다. 노트북 앞에서는 컵라면을 먹으면 안 된다.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마시는 게 좋다. 환경을 생각해서라기보다, 아주 뜨겁거나 아주 차가운 상태로 오랫동안 마시는 게 좋아서다.


내가 평소 즐겨 먹는 음식에 대한 묘사는 이런 것들 뿐이다.


어느 날 오후, 중고 서점에 들렀다가 역시나 푸드 에세이를 모은 책을 한 권 골랐다. 어린 시절부터 달걀과 명란을 좋아했다는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그래. 오늘은 꼭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글을 써보자.’하고 다짐했다. 나는 해물과 과일을 정말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식당에서 사 먹는 해물요리와 남이 깎아준 과일을 좋아한다. 마침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인 수박이 제철이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과일 가게에 들렸다. “사장님, 수박이 얼만가요?” “이만 원이요.” “네에. 안녕히 계세요.”


그래. 수박은 다음에 먹자.


사실 내 냉장고에는 부모님이 보내 주신 식재료가 가득하다. 고깃집을 하시는 부모님은 주기적으로 엄청나게 무거운 스티로폼 상자를 보낸다. 어느 날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 앞의 그 상자를 발견하면, 착잡한 마음이 들곤 한다. 나는 그걸 들지도 못해서 온 힘을 다해 현관으로 밀어 넣고, 가위와 일회용 비닐봉투를 한 통을 챙겨 와 작업을 시작한다.


 내용물의 대부분은 얼린 고기다. 작은 식당에서 하루 동안 판매할 정도의 양으로, 한 번에 구워 먹을 수 있을 만큼씩 소분하는 일만 삼사십 분 정도가 걸린다. 오밤중에, 벌겋고 축축한 고기를 비닐봉투에 잘라 넣다 보면 괴담 속 식인 살인마라도 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상자의 나머지를 채우는 것은 사과와 참치캔, 김 등으로 엄마가 손에 잡히는 대로 채워 넣은 것들이다.


지금 내 냉장고를 가득 채운 것은 네 종류의 얼린 생선이다. 이달 초 아빠 생신에 집에 내려갔을 때 엄마가 싸준 것들로, 고등어와 갈치, 그리고 이름 모를 큰 생선 두 가지가 있다. 이번 주는 음식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이름 모를 생선 중 한 가지를 골라 구웠다.


요리는 네이버 검색으로 시작한다. ‘에어 프라이어 생선 굽기’를 검색하여 가장 친절해 보이는 제목을 눌렀다. 블로거가 시키는 대로 에어 프라이어에 종이 호일을 깔고 이름 모를 생선을 반으로 잘라 넣었다. 200도에서 15분. 15분 동안 손빨래를 하고 돌아와, 생선을 뒤집어 다시 15분 동안 구웠다. 새 가전제품에서 나는 플라스틱 냄새와 약간의 비릿한 냄새가 섞여 방 안에 퍼졌다. 주방 환풍기를 2단으로 돌리고 창문 방향으로 선풍기를 틀었다. 공기 청정기의 터보 모드 소리까지 더해져, 텅 빈 방이 여러모로 소란스러워졌다.



팅 소리와 함께 다 구워진 생선. 이름 모를 생선 두 조각은 노란빛으로 골고루 잘 익었다. 접시에 담아 놓고 보니 모양이 그럴싸했다. 엄마한테 보낼 사진을 한 장 찍어 두고, 가운데 붙어 있는 큰 뼈를 발랐다. 온 가장자리에 작은 뼈들이 있어서 심슨을 끄고 생선에 집중했다. 에어 프라이기로 구운 덕분인지, 기름을 두르지 않았는데도 겉은 바삭하고 속살은 촉촉했다. 생선구이에 성공한 것이다.


마침 엄마한테 전화가 왔고, 나는 자랑스럽게 생선을 구워 먹었다고 이야기했다. “어떤 거 구워 먹었어?” “모르겠어. 일단 고등어랑 갈치는 아니야. 근데 껍데기가 엄청 엄청 맛있었어.” “그럼 임연수네.”


내가 오늘 먹은 생선은 누구네 집안을 망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가진 임연수였다. 다음엔 밥이랑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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