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팔 마피아의 대서사시 09
2012년, 레브친은 어펌을 창업했다. 이는 단순한 새로운 사업이 아니라, 미국 소비자 금융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었다. 2012년 페이팔 공동창업자 맥스 레브친에 의해 설립된 어펌은 현재 미국 최대의 후불결제(BNPL) 대출업체가 되었다. 그러나 레브친의 비전은 단순한 결제 서비스를 넘어선 것이었다.
어펌 창업의 배경에는 레브친의 개인적 신념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전통적인 신용카드시스템이 소비자에게 불투명한 수수료 구조와 복합 이자로 인해 불공정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젊은 세대가 신용카드 부채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목격하며, 더 투명하고 공정한 금융 서비스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어펌의 최고법무책임자 캐서린 애드킨스가 작성한 서신에 따르면, "어펌은 신용카드의 대안을 제공하고 도덕적 기반과 소비자 우선 사고방식을 갖춘 최초의 결제 플랫폼 구축을 위해 설립되었다"라고 밝혔다.
어펌의 비즈니스 모델은 기존 신용카드 산업의 관행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전통적인 신용카드 회사들이 복합 이자와 각종 수수료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과 달리, 어펌은 투명한 고정 할부 시스템을 도입했다. 소비자는 구매 시점에서 정확한 상환 계획과 총비용을 알 수 있었다.
어펌은 경쟁사들과 달리 가맹점 수수료, 대출 이자, 그리고 성장하고 있는 어펌 카드(현재 170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BNPL 기능이 있는 직불카드)를 통한 균형 잡힌 수익 창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다각화된 수익 모델은 단일 수익원에 크게 의존하는 경쟁사들과 차별화되는 요소였다.
어펌의 핵심 혁신은 실시간 신용 평가 시스템에 있었다. 전통적인 FICO 점수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데이터 포인트를 분석하여 개별 소비자의 상환 능력을 평가했다. 이는 신용 이력이 부족한 젊은 층이나 기존 신용 평가 시스템에서 소외된 계층에게도 공정한 금융 서비스 접근 기회를 제공했다.
어펌의 사업 구조는 세 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되었다. 첫째, 온라인 체크아웃 시스템과의 통합이었다. 소비자가 온라인 쇼핑을 할 때 결제 단계에서 어펌의 할부 옵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둘째,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결제 솔루션을 제공했다. 셀프 체크아웃 키오스크나 디지털 지갑과의 연동을 통해 오프라인에서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셋째, 가상 및 실물 카드를 통한 결제 수단을 확장했다.
레브친은 어펌 운영에서 '소비자 우선' 원칙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 구호가 아니라, 실제 사업 결정에서 구현되는 철학이었다. 예를 들어, 어펌은 연체료나 숨겨진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 정책을 고수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소비자 신뢰와 브랜드 가치를 구축하는 전략이었다.
어펌의 초기 성장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2012년 창업 당시에는 '후불결제(BNPL)' 개념 자체가 미국 시장에서 생소했다. 기존 신용카드시스템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결제 방식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레브친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점진적 시장 침투 전략을 택했다. 초기에는 특정 온라인 소매업체들과 파트너십을 맺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특히 가구, 전자제품, 패션 등 고가 상품을 판매하는 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할부 결제의 필요성이 높은 영역에서 시작했다.
2025년 현재 어펌은 2,200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280억 달러의 결제를 처리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은 단순한 양적 확장을 넘어, 미국 소비자들의 결제 행태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어펌의 경쟁 우위는 정교한 기술 시스템에서 나왔다. 레브친의 페이팔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어펌은 실시간 위험 평가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기존의 정적인 신용 평가와 달리, 수천 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개별 거래의 위험도를 평가했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은 소비자의 구매 패턴, 소셜 미디어 활동, 디지털 풋프린트 등 다양한 정보를 종합하여 상환 능력을 예측했다. 이는 전통적인 FICO 점수보다 더 정확하고 포용적인 신용 평가를 가능하게 했다. 특히 신용 이력이 부족한 젊은 소비자들에게는 기존 시스템에서 얻을 수 없었던 금융 서비스 접근 기회를 제공했다.
어펌의 성공은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에서도 나타났다. 레브친은 단순히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상거래 생태계의 핵심 인프라가 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주요 온라인 소매업체들과의 깊은 통합을 추진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아마존, 타겟, 월마트 등 주요 소매업체들과의 파트너십이었다. 이들과의 협력을 통해 어펌은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소매업체들의 매출 증대에 기여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할부 결제 옵션 제공으로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증가하고, 이는 곧 파트너 업체들의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2012년에 설립된 어펌은 2021년 1월 120억 달러의 기업가치로 상장했다. 이는 레브친의 기업가적 여정에서 중요한 이정표였다. IPO 당시 레브친은 2,750만 주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는 IPO 가격 범위 상단 기준으로 10억 달러가 넘는 가치를 의미했다.
그러나 상장 이후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2022년 초 금리 상승, 경기침체 우려, 소비자 지출 약화 등이 겹치면서 주가가 90% 급락했다. 이는 어펌뿐만 아니라 전체 핀테크 업계가 직면한 도전이었지만, 레브친에게는 개인적으로도 큰 시련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2023년에 놀라운 회복세를 보였다. 이러한 회복은 레브친의 위기관리 능력과 장기적 비전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는 시장의 단기적 변동성에 흔들리지 않고 어펌의 핵심 가치와 사업 모델에 대한 믿음을 유지했다.
BNPL 시장의 급속한 성장과 함께 경쟁도 치열해졌다. 클라르나(Klarna), 애프터페이(Afterpay), 스플릿(Sezzle) 등 다양한 경쟁사들이 시장에 진입했다. 이러한 경쟁 환경에서 어펌의 차별화 전략은 무엇보다 투명성과 소비자 보호에 중점을 두는 것이었다.
레브친은 경쟁사들이 제로 이자를 강조하며 실제로는 가맹점 수수료에 의존하는 모델과 달리, 어펌은 명확한 이자 구조를 통해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을 구축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마케팅 측면에서 불리할 수 있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건전하고 예측가능한 사업 구조를 만들어냈다.
BNPL 산업의 성장과 함께 규제 당국의 관심도 높아졌다. 소비자금융보호청(CFPB)을 비롯한 규제 기관들이 BNPL 서비스에 대한 감독 강화를 추진했다. 이에 대해 어펌은 CFPB에 서신을 보내 BNPL의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고려한 규제 접근을 요청했다.
레브친은 이러한 규제 환경 변화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인식했다. 적절한 규제 프레임워크의 구축은 시장의 신뢰성을 높이고, 책임감 있는 업체들에게는 오히려 경쟁 우위를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어펌은 규제 당국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산업 표준 수립에 기여하고자 했다.
어펌의 사회적 영향은 단순한 상업적 성공을 넘어섰다. 전통적인 신용 평가 시스템에서 소외된 계층들에게 금융 서비스 접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금융 포용성 확대에 기여했다. 특히 신용 이력이 부족한 젊은 세대나 이민자들에게는 경제 활동 참여의 새로운 통로를 열어주었다.
레브친은 이러한 사회적 가치 창출을 어펌의 핵심 정체성으로 강조했다. 단순한 수익 추구를 넘어, 더 공정하고 투명한 금융 시스템 구축에 기여한다는 사명감을 직원들과 공유했다. 이는 회사 문화와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일관되게 반영되었다.
2025년 3월, 어펌은 식서스 스트리트(Sixth Street)와 40억 달러 규모의 자본 파트너십을 체결했으며, 이는 어펌이 확보한 역대 최대 규모의 자본 약정이었다. 이는 어펌의 성장 잠재력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보여주는 동시에, 향후 확장을 위한 탄탄한 자본 기반을 제공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첫째, 경제 침체기에서의 신용 위험 관리가 중요한 과제다. BNPL 모델의 특성상 경기 하강기에는 연체율 상승 위험이 있다. 둘째, 치열해지는 경쟁 환경에서 차별화된 가치 제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셋째, 규제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도 혁신 동력을 유지해야 한다.
레브친의 리더십 스타일은 기술적 완벽주의와 인간적 공감능력의 결합으로 특징지어진다. 페이팔 시절부터 쌓아온 기술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소비자의 실질적 필요를 깊이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중시하지만, 동시에 그 뒤에 있는 인간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그의 장기적 관점이다. 레브친은 어펌 상장 이후에도 자신의 주식을 한 주도 매각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재무적 결정을 넘어, 어펌의 장기적 가치와 사명에 대한 그의 확신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동이었다.
맥스 레브친과 어펌의 이야기는 단순한 기업 성공담을 넘어선다. 이는 개인의 신념과 사회적 필요가 만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레브친은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로서의 경험, 페이팔에서의 기술적 혁신, 슬라이드닷컴에서의 실패와 성찰, 그리고 어펌에서의 사회적 사명 실현에 이르는 여정을 통해 진정한 혁신가로 성장했다.
어펌의 성공은 기술적 우수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 근저에는 더 공정하고 투명한 금융 시스템에 대한 레브친의 깊은 신념이 있었다. 이러한 신념은 사업 모델, 기업 문화, 그리고 전략적 의사결정에서 일관되게 구현되었다.
현재 어펌은 미국 BNPL 시장의 선도기업으로 자리 잡았지만, 레브친의 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금융 서비스의 민주화, 소비자 권익 보호, 그리고 기술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그의 목표는 어펌을 넘어 전체 핀테크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레브친의 이야기는 개인의 역경이 어떻게 사회적 혁신의 동력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민자로서의 경험, 기술자로서의 전문성, 그리고 기업가로서의 비전이 결합되어 기존 금융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도전을 만들어냈다. 어펌의 미래는 이러한 철학적 기반 위에서 어떻게 지속가능한 성장과 사회적 가치 창출을 동시에 달성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