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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 3편 - 01

by 한정엽

1987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의 해였다.


이 해에 일어난 6월 민주항쟁과 그에 뒤따른 노동자 대투쟁은 단순한 정치적 변화를 넘어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이끌어낸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이 두 사건은 상호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각각 독특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6월 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 이후 계속되었던 군사독재 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의 정점이었다.


전두환 정권의 호헌 조치와 이에 따른 정치적 억압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 학생의 죽음은 국민들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출처 : 위키피디아>


이 항쟁은 단순히 정치 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을 넘어, 한국 사회 전반의 민주화와 근본적인 변혁을 추구하는 범국민적 운동으로 발전했다.


민주항쟁의 승리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지만, 이는 정치적 민주화의 시작에 불과했다.


정치적 자유가 확대되면서 그동안 억압되었던 사회적 모순과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고, 특히 노동자들의 권리 의식이 급속히 고조되었다.


이는 곧바로 전국적인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


경제 발전과 사회적 모순의 심화


1960년대부터 추진된 경제개발 정책은 한국을 아시아의 경제 성장 모델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심각한 사회적 모순을 누적시켰다.


경제 성장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 조건에 시달렸고, 노동조합 활동은 철저히 억압되었다.


정부는 경제 성장을 위해 노동자들의 희생을 당연시했고, 기업들은 이러한 정부 정책에 편승하여 노동자들을 단순한 생산 요소로 취급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경제 규모는 급속히 성장했지만, 경제 성장의 과실은 소수에게 집중되었고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상대적으로 정체되었다.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적 억압과 결합하여 사회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노동자들은 경제 성장에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에서 소외되었고, 이들의 불만은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민주항쟁이 촉발한 사회의식의 변화


6월 민주항쟁은 한국 사회 전반의 의식 변화를 이끌어냈다.


국민들은 더 이상 권위주의적 통치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고, 자신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식 변화는 특히 노동자 계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동안 정치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억압받아왔던 노동자들은 민주항쟁의 성공을 통해 자신들도 사회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민주항쟁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단순한 지지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로 나섰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주요 기업의 노동자들이 민주화 운동에 동참했고, 이는 이후 노동운동의 확산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또한 민주항쟁을 통해 형성된 시민사회의 연대 의식은 노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6월 민중항쟁의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6월 민주항쟁의 전개와 경제적 파급효과


6월 10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조작 발표를 계기로 시작된 민주항쟁은 연일 확산되었다.


6월 18일 이한열 학생의 최루탄 직격 사건은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증폭시켰고, 6월 26일 평화대행진에는 전국적으로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


이러한 대규모 시위는 경제활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민주항쟁 기간 동안 상당수 기업들이 조업을 중단하거나 단축 운영을 했다.


특히 서울과 부산 등 주요 도시의 상업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고, 주식시장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적인 경제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민주항쟁은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6월 29일 노태우의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수용되면서 민주항쟁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정치적 민주화의 성과는 곧바로 경제 영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특히 노동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노동자 대투쟁의 폭발적 확산


민주항쟁이 마무리된 직후인 7월부터 전국적으로 노동분쟁이 급증했다.


7월 5일 현대엔진 노동자들의 파업을 시작으로,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등 주요 제조업체에서 연쇄적으로 파업이 발생했다.


이러한 노동분쟁은 단순한 임금 인상 요구를 넘어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민주노조 건설, 근로 조건 개선 등 포괄적인 노동권 확보를 목표로 했다.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동안 발생한 노동분쟁은 3,000건을 넘어섰고, 이에 참여한 노동자 수는 120만 명에 달했다.


이는 그 이전 30년간의 노동분쟁 건수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였다.


노동자들은 그동안 억눌려왔던 불만을 일시에 분출시켰고, 이는 한국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사회적 격변으로 이어졌다.


1987년 대투쟁 당시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출처 : 민주노총>


노동운동의 질적 변화와 조직화


노동자 대투쟁은 단순히 양적 확산에 그치지 않고 노동운동의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


기존의 어용노조 체제가 무너지고 민주노조 건설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노동자들은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건설하여 진정한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조직을 만들고자 했다.


특히 제조업 부문에서 산업별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현대그룹 계열사 노동자들은 현대그룹 노동조합 협의회를 결성했고, 조선업계에서는

조선노연(현 조선업종노조연대)이 조직되었다.


이러한 산업별 조직화는 노동자들의 교섭력을 크게 향상했고, 기업들로 하여금 노동자들의 요구에 보다 진지하게 응하도록 만들었다.


노동운동의 조직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정치의식도 크게 성장했다.


노동자들은 단순히 임금 인상이나 근로 조건 개선을 넘어, 사회 전체의 민주화와 경제 정의 실현을 위한 사회 변화의 주체로 자신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와 권력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기업과 정부의 대응 및 사회적 갈등


노동자 대투쟁에 직면한 기업들은 처음에는 강경하게 대응했지만, 파업의 확산과 여론의 압박에 직면하여 점차 협상 테이블에 나서게 되었다.


많은 기업들이 상당한 수준의 임금 인상을 받아들였고,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간섭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기업들에게 상당한 경영상의 부담을 가져다주었다.


정부 역시 노동분쟁에 대한 대응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했다.


민주화 이후 정부가 노동분쟁에 직접 개입하여 억압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고, 대신 노사 간의 자율적 협상을 통한 해결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이는 한국의 노사관계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도 증가했다.


기업들은 급속한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경영 부담을 호소했고, 일부에서는 노동운동의 과격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노동자들과 기업, 그리고 정부 사이에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갈등이 발생했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한국 경제구조의 근본적 변화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가장 직접적인 변화는 노동시장에서 나타났다.


노동자들의 교섭력이 크게 향상되면서 임금 수준이 상승했고, 근로 조건도 개선되었다.


1987년 이후 실질임금 상승률은 이전 시기에 비해 현저히 높아졌고, 이는 소득 분배 구조의 개선에 기여했다.


또한 노동조합의 활성화로 인해 노동시장의 투명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기업들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노동 조건을 결정할 수 없게 되었고, 노사 간의 협상과 타협을 통해 합리적인 노동 관계를 구축해야 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을 증가시켰지만, 장기적으로는 노동 생산성 향상과 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다.


경제 민주화와 시장 경제의 발전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의 성장은 한국 경제의 민주화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정치적 민주화에 따라 경제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가 확대되었다.


노동자, 시민사회, 중소기업 등 그동안 소외되었던 집단들의 목소리가 경제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특히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경제력 집중 완화와 공정 경쟁 질서 확립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시작되었다.


이는 한국 경제가 보다 균형 잡힌 성장 구조를 갖추어 나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노동운동의 성장은 내수 시장 확대에도 기여했다.


임금 상승에 따른 구매력 증가는 소비 시장을 확대시켰고, 이는 한국 경제가 수출 의존적 구조에서 벗어나 내수와 수출이 균형을 이루는 경제 구조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사회적 합의 시스템의 구축


1987년 이후 한국 사회는 노사관계를 비롯한 각종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


이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사회적 합의 시스템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노사정 협의체와 같은 사회적 대화 기구들이 설립되었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 시스템의 구축은 한국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했고, 이는 한국 사회 전반의 갈등 해결 능력을 향상했다.


23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행사 모습 <출처 : 위키피디아>


장기적 역사적 의미와 평가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 두 사건은 단순히 정치적 변화나 경제적 변화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 전체의 민주적 발전을 이끌어낸 역사적 사건이었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1987년의 변화는 한국 경제가 보다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 구조를 갖추어 나가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와 소득 분배 개선, 그리고 경제 민주화의 진전은 한국이 선진국형 경제 구조로 발전해 나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이었다.


또한 이 시기의 변화는 한국 사회의 시민 의식 성장에도 큰 기여를 했다.


국민들은 더 이상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능동적 시민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시민 의식의 성장은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현재적 의미와 미래적 과제


19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는 현재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새로운 도전과 과제들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화와 기술 발전으로 인한 노동시장의 변화, 고용 불안정성의 증가,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 불평등 등은 1987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할 과제들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노동의 성격과 노사관계도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19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이 추구했던 사회 정의와 경제 민주화의 가치를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중요한 과제이다.


결론적으로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은 한국 사회의 민주적 발전과 경제적 진보를 위한 중요한 이정표였다.


이들 사건이 남긴 유산은 현재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한국 사회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준거점이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는 더욱 공정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건설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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