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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ka Dec 01. 2021

때로는 낯선 이가 여행을 만든다

강릉에서 마무리하는 강원도 여행


목적지가 멀다면 로드트립으로


안반데기에서 별을 보고 돌아와 경포대 주변에 잡은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다. 이틀 째 아침, '아침식사 됩니다'가 적힌 횟집을 찾아 전복죽과 물회를 시켰다.



'동해'는 이토록 아름답지만 우리에게는 늘 멀디 먼 곳이었다. 당일치기로는 어림도 없는 왕복 이동시간을 자랑하기 때문에 한 번 가려면 큰맘먹고 일정을 잡아야하는 것이 그 이유일 터. 이번 여행도 자차를 몰고 떠나는 첫 여행이었기 때문에 한 방에 동해로 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 중간 중간 일종의 관광 정거장(?)을 세운 로드트립인 셈이다.


비성수기 여행은 때론 심심하기도 하지만 한가로움에서 얻는 여유때문에 꼭 다시 찾게 된다

날이 맑고 인파가 적어 더욱 아름다웠던 동해바다를 눈과 마음과 카메라 렌즈에 가득 담고 안목해변의 카페거리로 향한다. 몇 해 전 강릉에 왔을 때도 찾은 곳이지만 사전조사 없이 방문한 턱에 넘쳐나는 상가들 사이에 갈 곳을 잃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동행했던 친구와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결국 숙소가 있는 강릉역 주변의 테라로사로 향했었다.



강릉의 '힙'한 곳을 찾아


이번엔 근처에 어떤 카페들이 있는지 조금 찾아보았고, 뷰가 좋고 메뉴에 대한 평이 나쁘지 않은 젠주로 향한다. 커다란 유리를 통해 안목해변이 보이는 이 카페는 리뷰사진으로 보는 것 이상이다. 거대한 미술작품을 코 앞에서 두고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 든다. 성수기에는 아마 앉을 자리조차 없지 않을까.


여행 내내 어디를 가도 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이거나 어르신들만 많았는데, 드디어 젊은이들이 많은 '힙'한 장소를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남편도 비슷한 느낌이었는지 저기 앉아봐라, 이런 포즈를 해봐라, 이런 표정을 지어봐라 하며 여러장의 사진을 찍어준다.



애매하게 빵으로 배를 채운 우리는 순두부 젤라또를 먹으로 향한다. 전에는 순두부 거리에 있는 지점을 방문했었는데, 하필 그날은 비가 무지막지하게 내렸고 아니나다를까 젤라또 가게도 문을 닫았었다.


이 날은 2호점으로 방문해본다. 이 곳도 비수기 이른 시간에 방문한 덕에 꽤 넓은 공간을 대기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바로 주문을 할 수 있었다. 건물 옆에 조그마한 공간에 자리를 잡고 순두부 젤라또와 흑임자 젤라또를 마시듯 흡입한다. 순두부 맛이 나면서도 맛있어!



해변 바로 옆에 호수가?


내가 여행 중 행선지를 찾을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지도 어플리케이션이다. 해외여행이라면 구글맵, 국내여행이라면 카카오맵이 되겠다. 지도 상에서는 주로 초록색이나 파란색을 먼저 찾아본다. 도시에서는 찾기 어려운 드넓은 공원이나 호수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 주변을 지도로 보니 바다 옆에 또다른 커다란 물이 있는 것을 보았다. 신기하게도 해변 바로 옆에 호수가 있었다. 경포호였다.


멀리 보이는 건물은 경포호와 경포해변 사이에 위치한 스카이베이. 유미의 세포들에 주요 사건이 터지는 공간으로 방영되었다.

강릉에서 나오기 전에 경포호 주변을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해변 바로 옆에 이렇게 호수가 있다는 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아름답다. 걸어서 다 돌아보기는 좀 긴 거리라고 판단, 호수 시작점에 있는 자전거 대여소에서 현대식 인력거처럼 생긴 노오란색 네발자전거를 빌린다.


중간중간 멈춰 사진도 찍고, 경포호에서 문득 문득 튀어오르는 물고기도 구경한다. 한 바퀴를 다 돌고는 자전거를 반납한다.


휴대폰이 사라졌다

대여소에서 뒤돌아서면서 그간 연락온 게 없는지 휴대폰을 찾아본다. 어라? 가방이고 바지주머니고 다 뒤져봐도 내 휴대폰이 없다. 순식간에 눈 앞에 아찔해져서 자전거를 대여한 가게 앞에서 생난리를 친다.


"오빠, 나 휴대폰이 없어..! 어디다 두고 왔지? 어떡하지?"

"뭐...? 그 쪽 산책로라 차도 못가는데.. 나 먼저 뛰어가서 보고 있을테니까 차 안에 한 번 확인해보고 반대편 보면서 와봐."


둘 다 새파랗게 질려서 가게 앞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가려던 중, 그 가게의 옥상에서 우리를 보고 계시던 사장님께서 직원분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치신다.


"xx야, 자전거 어서 하나 빌려드려!"


나는 그 소리를 등지고 차로 달려가고, 남편은 감사인사를 하며 자전거를 빌려 올라탄다. 휴대폰을 두고 내렸을리가 없기때문에 차 안에는 백퍼센트 없을 것을 확신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조수석 문쪽의 수납공간에 휴대폰이 떡하니 있는 것 아닌가.


"오빠! 차에 있어!!!"


정말 짧았지만 너무나 급박했다. 그 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호수를 다시 돌면서 휴대폰을 떨어뜨렸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절망하고, 남은 여행일정을 잿빛으로 물들이는 것 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와서는 또 잃어버린 사진들에 대하여 몇날 며칠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며, 새로운 휴대폰을 구하기 위해 손품 발품을 팔아가며 얼마나 탄식의 한숨을 내뱉었을 것인가.


낯선 곳에서의 따뜻한 기억은 여행의 동력


결과적으로는 나의 잘못된 기억으로 발생한 짧은 해프닝이지만 그 순간에 어떻게든 우리를 돕고자 하셨던 사장님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자전거 대여로 수익을 내시는 분께서 - 물론 큰 금액이 아닐지언정 - 아무런 망설임없이 선뜻 자전거를 빌려주실 수 있었던 것은 현대인에게 휴대폰이 어떤 존재인지 아시기 때문에, 그리고 그 것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좌절감에 공감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자전거탄풍경(033-644-1243) 사장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일상에서도 공감받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여행 중에, 낯선 어딘가에서는 더욱 감사한 일이다. 그것은 그저 '감사함' 이상으로 여행 전반에 대해 좋은 기억을 남기고, 다시금 여행을 떠나게 만든다. 오래된 여행노트에는 낯선이에게 우연치 않게 받는 도움과 친절이 여기저기 남겨져있다. 멋진 장소를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여행의 일부이지만 나는 사람과 사람간의 온정을 느낄 때 또 다른 여행의 매력을 느끼곤 한다. 기억은 때로는 거친 일상을 버텨내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말이다.



전나무 숲에서 전나무는 안보고 땅만 보고 걸은 이유



휴대폰 사건 때문이었는지 피로가 무지막지하게 몰려온다. 남편이 운전 중인데 나 혼자 잠들 수는 없기에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좀 자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조금만 잘게~' 한 것이 거진 30분이다. 덕분에 주차장부터 화장실까지 왕복 20분 거리를 혼자 다녀오고, 내가 깨어난 뒤에 월정사를 향해 똑같은 길을 다시 걸어야했던 남편은 조금 화가 난 모양이다. 행복했'던' 여행으로 남기기 위해선 사활을 걸고 변론을 해야한다. '그렇게 오래 잠든지 몰랐어~ 그냥 전화해서 나를 깨우지! 화장실이 그렇게 멀고 가는 길 방향에 있는지도 몰랐구~'


휴, 신혼의 묘미는 역시 투닥투닥이다.


아무튼 오대산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월정사 전나무숲이다. 동선상 그렇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이 곳을 여행일정에 넣은 이유는 남편의 추천 때문이었다. 대학원 시절 교수님의 인도로 동료들과 다같이 방문했었다는데, 숲에서 다람쥐가 튀어나와 사람들에게 서스럼없이 다가가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고 한다.


입구에 주차를 하고 월정사 방면으로 난 길을 따라 걷는다. 하늘 위로 쭉쭉 뻗은 전나무가 장관이다. 숲사진을 겨우 두어장 찍고나서 우리는 땅만 보며 걷는다. 눈에 불을 켜고 다람쥐 수색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꽤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다람쥐가 한 마리도 안보인다. 날이 추워져서일 것이다.

"다람쥐는 언제 나와? 엄청 많다며~ ㅠㅠ"



15분 즘 걸었을까, 드디어 다람쥐 한 마리를 포착했다. 수풀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던 다람쥐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살짝 손을 내밀었더니 내가 도토리라도 주려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쪼르르 다가온다. 하지만 이 똑똑한 친구는 코를 몇 번 킁킁거리고 내가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인간인 것을 알아차린 뒤 냉정하게 돌아서 가버렸다. 아쉽지만 귀엽디 귀여친구 한 마리(?)로도 우리가 전나무숲에, 정확히는 오대산을 한 번 제대로 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기엔 충분했다.



강릉에서의 마지막 식사


서울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강릉역 근처 맛집을 찾아본다. 오랜 인기를 유지해온 관광지답게 멋진 곳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 새로운 닭요리를 먹어볼 수 있는 라라옥을 방문해본다. 순두부 튀김도 새롭고 커리형태로 제공되는 소스도 정말 참신하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곳도 성수기였다면 사람이 넘쳤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비수기는 어딜가나 사람이 없어 조금 황량한 느낌도 들고 여행 온 기분이 덜 나긴 하지만, 한가롭고 여유있게 즐길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이 애매한 시기에 온 덕에 편안하게 즐기고 누리다 돌아가는 것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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