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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춘노 Mar 16. 2024

나의 노량진 투어

춘노투어를 따라가면

  무척 싸게 즐기는 여행이 있다.

  난 이 여행 코스를 '춘노투어'라고 부른다.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직장이 생기고는 분기별로 한 번은 즐겼던 나의 기본 코스가 있어서 소개한다.  


  춘노 투어의 기본은 혼자 즐기는 여행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여행의 기본적인 이동과 숙박과 식사가 거의 내 마음대로이다. 고향에서 서울까지 빠른 기차로 가면 2시간이 걸린다. 보통은 숙소를 먼저 정하고, 여행지를 고르겠지만, 난 일단 퇴근한 시점에서 가장 빠른 기차를 금요일 밤이라도 골라 탔다.


  그렇게 자정 무렵이나 그전에 용산에 도착만 하면 된다. 기차가 좀 비싸긴 하지만, 이후 일정은 소박하다. 전철로 한 정거장만 지나면 있는 노량진역에서 장승배기 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찜질방에 들어만 가면 된다. 그리고 씻고는 허기진 마음에 계란 라면을 먹고, 맨바닥에서 쿨쿨 잠이 든다.

  신기하게도 불면증에 고생했던 순간에도 그곳에서는 아침 늦게까지도 잠이 왔다. 그러다 새벽에 깨면은 컵라면을 하나 먹고, 다시 잠들었다. 물론 찜질방임에도 난 찜질은 하지 않았다. 다만 사우나만 좀 즐길 뿐.


  그리고는 10시에 나와서 노량진 어딘가를 걷거나, 추억을 좀 떠올리는 장소에서 잠시 머물렀다. 이번에는 내가 살던 고시원. 높은 언덕에 있던 고시원이었고, 반지하에 큼지막한 바퀴벌레가 주변에 있었다지만 난 행복했다. 따뜻한 방이었고, 시원한 방이었고, 오직 나만의 공간이었으니까. 105호를 떠나기 싫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근처 성당에서 기도를 하던 때를 떠올렸다. 참 일이 안 풀리던 시기였다. 모진 것이 인생이라 했던가? 실패만 하던 사람에게 무교에 청년이 기도를 올렸다. 참 경건하게 말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성당은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이 자리에서 다짐했던 순간을 함께 떠올리면서 기도를 했다.


  '과연 나는 당시의 다짐을 지키고 있던가?'

  노량진역을 내려오는 언덕에서 나의 다짐을 생각했다. 합격해서 사람답게 살겠다고 했던 나의 기도는 하늘에 닿았을지는 모를 일이다. 혹시나 어느 절대자가 내 기도를 들었다가 지금의 모습에 실망하면 어떨지. 아니 지금 부끄러운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라 나 자신 아닐까?


  변해버린 노량진의 대로를 바라보면서 세상이 변하는데, 나도 조금은 변해도 되지 않을지. 자리 합리화를 해보면서 없어진 육교 밑에 새로 난 횡단보도를 건넌다. 그래야 용산역으로 갈 수 있으니.

  용산에서는 가끔 옷을 샀다. 계절이 바뀌는 틈에는 사이즈만 바뀌는 옷을 사고, 점심은 내가 좋아하는 흑돼지김치찌개 정식을 먹는다. 여러 고기 종류도 그렇지만, 이곳 라면 사리가 맛이 좋았다. 짭짤한 것이 밥을 부르는 맛이 일품이다.

  그리고는 이곳저곳 구경을 하다가 영풍문고에서 책을 본다. 서점에서는 주로 신간을 챙겨서 보는데, 오프라인 서점에서야 새로운 작가의 신간을 구경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놓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렇게 하루를 즐겁게 보내면, 친구와 함께 소주를 마시기 위해서 다시금 노량진 수산시장을 간다. 그리고 사치스러운 회를 시켜 놓고는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빈병을 늘렸다.


  가끔 그런 질문을 받는다.

  "왜 그리 궁상이야. 좋은데 가지."


  그럴 때마다 웃으며 말한다.

  "누구나 마음이 편해지는 나만의 공간. 그거 하나쯤 있잖아?"


  아마 그게 나에겐 노량진 아니었을지. 오늘 같은 주말 엉덩이가 가벼운 건 춘노투어가 필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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