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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하 Jun 03. 2019

나에게 맞는 업무

그것은 유니콘 같은 것

엔참님은 지금 업무가 마음에 드세요? 아니 다름이 아니라, 혹시 힘드신 점이 있으시다면 도와드리고자 함이에요.


인사팀과의 면담에서 나눈 대화이다. 딱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배치받은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의례적으로 하는 면담이었다. 이때 나는 아무 문제없다고 답하였고, 실제로 나의 평가(?) 역시 큰 문제가 없다는 방향성이었기에 그냥 그렇게 넘어갔던 일이었다. 해프닝 까지도 아니고, 팀원들에게 말할 것도 아니고, 그냥 이런 일이 있었다~정도로 지나갈만한 면담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거짓말처럼 문제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엔참님, 그때 부탁드린 건 말이에요, 제가 거의 다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엔참님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주도적으로 해주세요.


엔참님, 전에 부탁드린 업무 관련 연락이 이제 엔참님한테 다이렉트로 갈 것이니 확인 좀 해주세요.


물론 회사에서 돈을 받고 일을 한다는 사람이라면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당연한 것인데, 아직 신입 딱지를 달고 그 게딱지 안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던 나에게는 ‘배치받은 지 벌써 몇 달인데 아직도 신입처럼 구는 거예요?’처럼 들렸다. 그리고 이는 사실이다. 나에게는 이제 신입이라는 단단한 껍데기가 없다. 맨몸으로, 최전선에 나가야 한다.


울고 싶었다. 인사팀과 면담할 때 나는 이 직군이 아니라 다른 직군이 맞을 것 같다고 운이라도 띄워 볼 걸. 백 번은 후회했다. 그때의 나는 왜 아는 것도, 하는 것도 쥐뿔도 없는 주제에 지금 업무를 함부로 논하였을까.


내 직업은 내성적인 나에겐, 어쩌면 처음부터 맞지 않았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것을 자소서 1번, 지원 동기를 작성하던 그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업종이 좋았고, 이 직군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저런 말을 들을 때면, 정확히는 저런 별것도 아닌 말에 소라게의 속살을 도려낸 것처럼 상처 받는 나에게는 과연 맞는 일일까? 계속하여 그런 고민이 든다.


세간에서는 사람마다 적성이 있고, 저마다 맞는 직업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많은 적성 검사와 성격 검사가 성행하는 것이리라. 당신에게는 이 직업이 맞아요, 하는.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 적성이라는 것을 모르겠는 사람이 산처럼 많기 때문에 검사받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검사를 받는다고 한들, 내가 성향과 맞는 직업이 내 전공과 맞지 않으면? 경력과 맞지 않으면?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생각을 멈추게 된다.


진짜 나에게 맞는 직업이라는 게 있을까?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어쩌면 유니콘 같은, 이상 속에만 존재하는 존재는 아닐까? 하지만 또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 맞아서 행복하다는 그 누군가를 보면, 또 기대하게 된다. 나에게 맞는 업무라는 건 실존하는 것이고 나는 아직 찾지 못하였을 뿐이라고.


바보같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나의 유니콘을 찾아가는 중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내 유니콘이 아닐 수 있다. 그리고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 후일 수도 있다. 어쩌면, 평생 못 찾을 수도 있다. 그래도, 무언가 계속해 나간다면 꼭 이데아 속 유니콘이 아니더라도 내 나름대로의 삶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스스로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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