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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하 May 18. 2021

여름

여름이 달가운 것은 내가 가만히 있어도 달뜰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지 모른다.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살을 찌르는 듯한 햇빛도, 온몸을 익혀버릴 기세의 더운 기운도 사랑한다. 그것이 나를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더 나아가 내가 남들처럼 불타며 살아있다는 듯한 느낌을 이따금 받을 수 있게 한다. 


언제나 미지근한 사람이다. 그레이존이라기엔 그런 색 마저도 희미한. 나는 그런 사람이기에 늘 나를 불길 속으로 강제로라도 던져 넣을 수 있는 화마를 내심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반강제적이라도 나를 불타게 할 수 있을 무언가를 추구한다. 그렇다면 나도 항성처럼 빛을 남기고 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관념이 나를 붙든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고통스럽다. 동경과 질투로 이루어진 덩어리와 같은 감정이 내 안을 온통 지배하고 있기에 이를 몰아낼 수 있는 한여름의 태양을 갈구하나 그 마저도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결국 내면은 변하지 아니한 채로 멈추어 있다. 


내 안에서 내 감정의 깊고 검은 물은 물결도 일으키지 않고 그저 한 곳에 고여 있다. 이따금 작은 돌이 던져져 파문이 일어도 이는 표면에서만 잠시 일어날 뿐이고 이내 사그라든다. 그 깊이를 알려 들여다보면 심연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를 비춰줄 한 여름의 뙤약볕을 기대하나 이는 요원하기에 오늘도 고여있는 깊이 모를 웅덩이만을 응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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