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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소리 Nov 18. 2024

40대의 새로운 도전, 낯선 사람 컬렉터 되기

한 번씩 휴대폰 연락처를 주기적으로 정리하곤 한다. 1년 이상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번호는 설마 앞으로도 연락을 주고받을 일이 있을까 싶어 과감히 삭제하는 편. 새로 저장되는 번호보다 삭제되는 번호의 개수가 어째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과연 이런 나의 관계 맺기 방식이 옳은 것인가 요즘은 자주 갸우뚱하게 된다.


한 번은 내 핸드폰 속 연락처들을 쭉 스크롤하다 저장되어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업무 관련 인연이거나 예전 지인들로 채워져 있단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다. 40대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나이가 된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익숙한 관계에만 안주하게 되고, 새로 접할 수 있는 세계 역시도 이전처럼 넓지 않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나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은 커녕 그 반경이 점점 좁아지고, 그마저 유지하고 있던 사람들과의 관계 마저도 꼬들꼬들 메말라버릴 것 같았다. 같은 코드, 같은 취향이라는 이 제한된 틀에 갇혀 내가 접하는 세상은 점점 더 좁아지고, 내게 그나마 남아있던 호기심 마저도 자취를 감출 것 같았다. 내 주변은 그저 같은 업계, 혹은 기존의 지인들로만 가득했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면 머리도 마음도 다크해질 것만 같았다. 그렇다. 이럴때야 말로 신선한 에너지 충전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다양한 분야의 새로운 사람들을 주기적으로 만나기’를 결심하고, 의식적으로 새로운 환경과 모임에 나를 내어놓기 시작했다.


첫 시도는 우연히 온라인에서 발견한 우리 동네 독서모임이었다. 안그래도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주변이 낯설기만 한데, ‘다들 대단한 독서가들이면 어떡하지?’, ‘X세대 끄트머리인 내가 젊은 MZ들 속에서 잘 어울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첫 모임을 앞두고 이걸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나름의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참석한 첫 모임은 나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경험이었다.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책과 인생 이야기를 나눴다. 전직 미술관 큐레이터부터 영양사까지, 그리고 미래를 위해 뒤늦게 대학원에 도전한 사람부터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참신한 사업을 구상중인 사람까지. 매주 책 이야기에서 시작해 그와 연관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한 번의 용기가 내 삶의 지평을 이렇게나 넓혀줄 줄이야.


독서모임은 이러한 모임의 한 예시일 뿐, 최근 나는 트렌드나 관심사를 반영한 모임에도 참석해 보기로 했다. 예를 들어 책쓰기 모임이나 디지털 노마드 세미나와 같은 모임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였기에 친해지기가 쉬워 부담이 덜했고, 그 분야 각자의 지식도 나눌 수 있어 유익헸다.


이런 네트워크의 확장은 단순한 인맥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더욱 다채로운 관점과 영감을 얻게 되었고, 덕분에 나의 일상 역시 점점 풍부해지고 있다.


요즘엔 다양한 취미 모임 앱들도 많다. 디지털이 선물한 아날로그적 만남이랄까. 등산, 와인 테이스팅, 보드게임 등 다양한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공통의 관심사가 있으니 대화도 자연스럽게 시작되더라. 40대의 회사원, 30대의 프리랜서 작가, 50대의 약사, 이렇게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드는 시간이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요즘 내가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은 ‘커피챗 프로젝트’이다. 온라인 인맥 중에 평소 흥미가 있거나 궁금한 직업을 가진 사람, 혹은 그만의 매력적인 스토리가 있는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SNS로 연결된 인연 뿐만 아니라, 직장, 지인의 소개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한 사람 한 사람과 1시간 정도의 대화를 나누니 서로에게 그리 부담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건 생각했던 것 보다도 더 신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평소 사진 찍는 것에 관심이 많으니 상대에게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노하우에 대해 알려주고, 사진을 나만의 감성에 맞게 보정하는 방법을 공유할 수도 있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과의 대화는 마치 ‘숨겨진 보물찾기’ 같은 즐거움이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인사이트와 열정을 얻으며, 나도 자연스럽게 다방면에서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얻게 될지도.


어느 순간부터 40대의 삶이 너무 단조롭게 느껴진다면, 그건 우리가 너무 익숙한 것에만 안주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우리 삶에 신선한 관점과 에너지를 불어넣어준다. 때로는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지만, 그 작은 용기가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배웠다.


"이번 주말에 OOO에서 재즈공연이 있다는데, 같이 갈래?"


오늘도 나는 새로운 만남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다. 40대의 삶이 이렇게 활기찰 수 있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어쩌면 나는 50대, 60대가 되어서도 새로운 만남을 통해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할지 모른다. 세상은 여전히 넓고, 아직 만나지 못한 흥미로운 사람들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도 나는 이 작은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멋진 40대를 넘어 멋진 인생을 위해, 나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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