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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미 Mar 19. 2021

남의 인생을 망가뜨릴 거면 네 인생도 걸 각오는 해야지

학교 폭력에 관하여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남이 자신에게 칼날을 들이밀면 소리를 질러 주변에 알리거나 혹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똑같이 칼 날을 내미는 대신, 덥석 그 손잡이를 잡아 자신의 배를 찌르는 사람들이. 남을 해할 바에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나는 항상 대체로 무해하고 생각이 깊은 그런 이들이 눈에 밟힌다.



초등학교 시절, 반에는 자신만만하고 언제나 반짝거리는 원단의 옷을 입었던 A와 다소 조용하게 사색을 즐기는 B가 있었다. 쉬는 시간이면 A는 B를 코너로 밀어붙이곤 했다. 몸싸움은 없었지만 어쩌면 그것은 더욱 처절한 폭력이었다. 습기에 곱슬곱슬해진 머릿결과 말없는 조용한 성격 같은 것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 광경을 지켜보며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안심이 되었다. 왜냐면 A는 나를 좋아했으니까. 공부를 잘하고, 나대지 않는 나를.



나는 A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B에게 종종 말을 걸었다. 도서관 세계문학 코너에서, 청소 당번만 남은 오후의 복도에서. 그건 내 방식으로 '나는 사실 너를 미워하지 않아'라고 표현하는 행위였다. 그리고 나는 아마 그를 통해 죄책감을 덜었던 것 같아. 적어도 나는 A 같은 사람은 아니야,라고.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비겁한 방관자의 자기 합리화다.



나 역시 중학교에 입학한 첫 학기에 일을 당했다. 내 필통이 별안간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거나 책이 찢어져 있곤 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첫 중간고사에서 반 일등을 했고 그게 아마 그네들의 에고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이름이며 전후 상황은 잊은 지 오래지만 나는 여전히 '필통 누가 그렇게 했게?'라고 정말 못생기게 웃던 그 얼굴을 기억한다. 나에 대한 담임 선생님의 신뢰와 주변 친구들 덕에 그들의 괴롭힘은 이어지지 않았고 그저 한 편의 에피소드로 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희미한 중학교 생활 중 그 얼굴만은 기억나는 것을 보면 당시의 나에게 꽤나 충격이었던 것 같다. 고작 이 정도의 페이퍼 컷도 쓰라린데, B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깊었을까.



유명인들의 학교 폭력 사건이 터지고 있는 요즘이다. 나는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구나, 한 편으로 안심이 된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공감능력이라곤 제로인 드라마 속 사이코패스 캐릭터가 멋지게 그려지던 것들이 항상 불편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로버트 그린의 '권력의 법칙'을 읽고 어설프게 현실에 적용하겠다며 나대는 이들이 웃겼다. 권선징악을 철 지난 미신으로 치부했겠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고 카르마는 언젠가 돌아올 것이다.  



아마 아직도 어디선가 그런 종류의 폭력은 계속되고 있겠지. 학교든, 모임이든, 직장이든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서나. 혹여 당신이 그러한 폭력을 당하고 있다면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그 그림자 괴물들에게 지지 말라고. 당신 눈에 보이는 거보다 그들의 몸집은 훨씬 작거든. 마음 어딘가에 구멍이 있으니까, 혹은 당신이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행복한 사람은 남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면서 우월감을 느끼지 않아. 그런 걸 생각할 시간 조차 없어.


Daniel Torobekov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윌리엄 H. 맥레이븐 장교는 저서 '침대부터 정리하라 (Make Your Bed)'에서 이런 말을 한다. 괴롭힘의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공포심과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고. 미 해군이 야간 바다 수영 테스트를 할 때 조금이라도 그들이 두려워하는 냄새를 보이면 공격하려고 주변을 뱅뱅 도는 상어와 같다고. 당신이 그들에게 대항할 용기가 있음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들은 끝내 당신을 물어뜯을 거라고. 그래서 당신은 용기를 내야 한다고. 그리고 그 용기는 당신의 내면에 잠재해있다고. 아주 다량으로.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내가 A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다는 찌질한 마음을 내려두고 '그 발언은 지나친 거 아니냐고' 한 마디만 했다면 B는 좀 더 쉽게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동급생들의 두려움의 냄새를 맡고 빙빙 돌던 그 상어의 코를 납작하게 주먹으로 갈겨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사실 용기를 냈어야 하는 것은 B가 아닌 내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라도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어야 하는 것이다. 방관자로 남고 싶지 않다면.  



아마 가해자들은 말할 것이다. 기억이 안 난다고. 어릴 적 철없던 시절에 저질렀던 실수라고. 충분히 반성을 했는데 왜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야 하냐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은 그 자들에게 B와 같은 이들이 조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해줄 수 있길 바란다. '당연하지. 불장난을 하기 전에 두 번 생각했어야지. 남의 인생을 망가뜨릴 거면 네 인생도 걸 각오 정도는 하고 덤볐어야 하는 거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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