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적립식이 아니었다
동유럽을 홀로 배낭여행하던 시절이었다. 달마티아해의 어느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만난 친구에게 물었다. "관광객들이 모르는 숨겨진 보석 같은 장소가 있다면 나에게만 귀띔해줘." 그 친구는 스플리트 남단에 있는 브라치 섬의 '볼(Bol)' 해변을 가리키며 장담했다. 감사의 인사는 나중에 받을게.
내 여행은 그런 식이 었다. 믿음직해 보이는 동료 여행자의 추천으로 다음 장소를 물색했고, 한 도시가 질릴 쯤이면 그제야 버스표를 끊어 떠나는. 정해진 계획대로 사는 것에 익숙하던 나로 써로는 일종의 모험이기도 했다. 귀에 들리는 대로 즉흥 연주하는 삶. 반드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긴 하루들.
스플리트에서 배를 타고 얼마간 들어가 도착한 브라치는 주로 로컬과 몇 부유해 보이는 골든 브라운 스킨의 여행객들로 가득 찬 작은 섬이었다. 당시에 섬에는 호스텔이 딱 하나 있었고 물론 가난한 배낭여행자인 나에게 옵션은 그뿐이었다. 가정집을 개조한 호스텔로 들어서니 뜬금없이 멕시칸 솜브레로를 쓴 데다 Samsung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나를 환한 웃음으로 마주했다.
호스텔 상주 직원이던 토미는 저녁마다 게스트들을 모아 피자와 맥주 파티를 벌였다. 그때마다 나와 다른 게스트들은 크로아티아 맥주인 오주스코(Ozujsko)를 얻어마시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말이야, 호스텔 숙박비로 낸 비용보다 더 많은 맥주를 마신 것 같은데 이래도 되는 걸까. 아무래도 내가 피자를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으니 비용을 부담하게 해 달라 했더니 토미는 손사래를 치며 친구에게 돈을 받을 순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 호스텔의 테라스에서는 아름다운 마을의 전경이 내려다 보였고, 작은 키의 구부러진 소나무들이 섬을 둘러싸고 있었다. 토미는 섬에 가끔 큰 바람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 바람이 찾아오면 모든 게 씻겨 내려간다고. 봐 봐, 지붕에 있는 저 구멍도 그때 난 거야. 그리고 그 거센 바람에 적응하기 위해 소나무들은 키가 작아지고 구부러진 거지.
나는 두렵지 않냐고 물었다. 언젠가는 다시 찾아올 그 바람과, 그 때문에 모든 걸 제자리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 그는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가끔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에서 오는 뭔지 모를 카타르시스 같은 게 있어. 그리고 그 바람은 항상 우리가 현재를 살게끔 하거든. 내일은 어떨지 모르니 가장 중요한 건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것. 그저 좋은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웃을 수 있는 게 인생의 전부야. 정말로.
그토록 한량처럼 보낸 여름은 스스로에게 일시적으로 허용한 사치였다. 나는 할 일이 많았고, 이와 같은 게으른 여름은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지도 모르니 충분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귀국하면 졸업 논문도 써야 했고, 열심히 자소서를 쓰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했다. 그리고 30대쯤엔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40대쯤엔 집도 한 채 마련해야겠지. 그제야 나는 비로소 행복할 권리를 얻을 수 있겠지. 아마도.
우리는 그렇게 행복을 유예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뻔한 거짓말. 대학에 가면 살도 빠지고, 남자 친구도 생길테니 지금은 참아. 어쩌면 그것은 끝이 없어 보이는 새벽을 지나는 우리를 위한 백색의 거짓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니 사람들은 일단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한 후에야 행복하자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니 이젠 집을 한 채 사고 나서 행복하자고 말했다.
문득 교환학생 시절 우연히 룸메이트인 안나의 고향을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달마티아 해의 작은 섬인 파그(Pag)에 있는 그녀 할머니의 별장에 초대받아 며칠을 묵었었다. 해적 선장처럼 큰 덩치에 호탕한 웃음을 짓는 그녀의 사촌 어부 라도반의 배를 타고 섬 주변을 여행하기도 했고, 안나 할머니의 친구가 만들어준 도넛을 먹으며 해수욕을 즐기기도 했다. 라도반 친구의 홈파티에 초대되어 그릴 치즈 샌드위치에 꿀로 만든 술인 메디차(Medica)를 마시며 초여름을 보냈다. 그 해 여름의 내 삶은 흐르는 리듬처럼 단순하고 편안했다.
작은 섬을 중심으로 영위되는 다채로운 삶. 그들은 가장 좋은 생선은 팔기보다 가족들을 위해 남겨놓는 편을 선택했고, 이방인인 나에게 가장 좋은 방을 내어주었다. 2013년 당시 크로아티아의 최저 임금은 한 달에 채 500불이 되지 않았다. 국가의 주 수입원은 관광이었고, 제조업 기반이 약하다 보니 대부분의 공산품은 독일에서 수입을 해 가격이 비쌌다. 경제적으로 봤을 때 결코 그들은 부유하지 않았고, 분명 이를 비관하는 자국민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들은 충만해 보였다. 아름다운 바다와, 2불만 주면 살 수 있는 달마티아 해의 태양을 잔뜩 머금은 자다르산 체리 한 바구니 그리고 유쾌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사실 그리 많은 게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행복은 목적지가 아닌, 찰나의 시간이다.
그 누구도 석양을 소유할 수는 없지만 오렌지색 노을을 최대한 음미할 수는 있지.
그들에게 배운 것은 행복은 생각보다 그리 비싸지 않다는 것이었다. 행복은 그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맥주를 즐기는 것이라고 했던 토미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인생의 굵직굵직한 이정표들을 달성했을 때 나는 잠시 동안 행복했지만 그 충만함은 지속되는 성격의 것은 아니었다. 공허해진 나는 이윽고 다른 목표를 찾아야만 했다. 무언가를 성취한 시간만큼 내가 행복하다고 느꼈던 적은 오후 4시에 노천카페에서 친구들과 만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별이 뜰 때까지 기다렸던 시간들이었다.
말하자면 행복은 도달해야하는 궁극의 목적지가 아닌 찰나의 느낌이었던 것이다. 이정표를 달성하는 순간 그 이후로 모든게 완성되며 Happily Ever After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루 하루를 살아가며 그 시간들 속에서 찾아야 하는 보물찾기였다. 이를 테면 석양처럼. 그 누구도 석양을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지만 오렌지색 노을을 최대한 음미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우리는 다가오는 저녁에 대한 불안으로 이를 흘려보내곤 한다. 하지만 오늘의 석양은 지나가면 다시는 똑같은 석양을 마주할 수 없게 된다.
행복은 유예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내 삶의 귀퉁이 사이에서 찾아내어 음미해야 하는 것. 그러니 지금 당장 행복할 것. 나는 더 이상 오늘 하루치의 행복을 미루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늘분의 행복은 누리지 않는다고 적립되는 것은 아니니까. 오늘치의 행복은 24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포인트다. 그러니 무조건 오늘 다 소진해야 한다. 프렌치 프라이는 엑스트라 라지로 시키고 치즈 토핑을 듬뿍 얹는다. 엄마한테 뜬금없는 시간에 전화해 애교를 부리고, 퇴근길 어스름의 하늘과 달이 오늘따라 유독 예쁘다고 호들갑을 떤다. 그렇게 오늘치 마시멜로우는 오늘 먹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