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쌓인 추억과 감정을 한 데 엮으면 한 권의 책이 된다"
이슬아 작가는 과거 유튜브에서 ‘아무튼출근’ 프로그램 요약본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작가가 글을 쓰고 출판사를 운영하고 글쓰기수업을 하며 생활을 일구는 모습은 어찌 보면 20대 때의 내가 원했던 삶을, 내가 문학청년 코스트레를 하며 추상적으로 그저 망상했던 삶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켜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젊은 작가의 표상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읽은 책 『시대예보』에서 다시금 이슬아 작가를 만나볼 수 있었는데, 책 내용에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라는 책이 소개되고 있었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책에서도 이슬아 작가가 이렇게 소개되고 있구나. 이슬아 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고서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그간 작품활동도 계속하면서 잘 계셨나 보다. 생각보다 대단한 작가님인 것 같다'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금 이슬아 작가의 존재를 떠올리게 되었고, 이참에 동네 도서관에 있는 이 작가의 책들이 뭐가 있나 볼까 하고서 둘러보다가 처음 빌려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는 작가가 예전에 작성해 놓았던 글과 그림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20대까지의 모습, 부모님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 등을 딸의 시선에서 바라본 내용들이 담겨 있으며, 작가가 작문은 물론 직접 작화까지 했다는 사실이 또 놀라웠다. 이슬아 작가는 참으로 야무진 감각의 소유자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훗날 딸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이 책에서 나오는 작가의 유년시절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딸아이의 마음속 심연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을 수도 있겠구나 라고 짐작해 보았는데, (이슬아 작가만의 고유한 유년시절의 성정일 수도 있겠으나) 작가가 보여주는 유년시절의 생각과 감정들은 자뭇 놀랍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나오는 작가의 모친 ‘복희’처럼 딸을 사랑하는 동시에 대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담담한 태도 또한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렇게 과거의 단편적인 기억들과 감정들을 놓치지 않고 글과 그림으로 남겨두면 이렇게 멋진 작품으로 엮이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문장도 작품이 된다. 별 것 아닌 하루들이 모여서 멋지고 당찬 삶이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이해하고 긍정하게 된다.
“매일을 들여다보며 감정을 더듬어보면 그것들이 쌓이고 모여 한 권의 책이 되는구나! 삶도 그럴 것이다!”
어느 날 엄마와 아빠가 함께 큰 가방을 들고 현관문을 나서더니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여섯 살 때였다. 나는 할머니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엄마는 다음날에도 돌아오지 않았고 그다음 날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울었다. 앞집 옆집 뒷집 사람이 잠을 못 잘 정도로 악을 써대서 달팽이관이 아렸다. 할머니는 쉬지 않고 우는 나를 진정시키느라 잠을 못 잤다. 나는 새벽 내내 엄마를 부르짖다가 동이 틀 때쯤 지쳐 잠이 들었고 점심에 눈을 뜨자마자 방바닥을 치며 다시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며칠 만에 노랗게 질렸고 주름이 늘었다.
일주일 뒤 엄마가 조금 그을린 얼굴로 현관에 다시 나타났을 때 나는 더 이상 울지도 못할 만큼 지쳐 있었다.
절대로 일주일 전과 같은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볼 수 없었다. 상실이란 게 뭔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엄마는 신발을 벗고 내게 다가왔다. 나는 마음이 너무 아려서 엄마가 나를 안지 못하게 했다. 며칠이나 나를 버려놓고 그렇게 단번에 나를 안을 수는 없는 거였다. 배신감에 치를 떨며 엄마의 팔을 두 손으로 밀쳐냈다. 그러자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얘 입술 앙다문 것 좀 봐!”
엄마는 덧니를 드러내며 웃었고 내 볼을 감쌌다. 나는 꼭지가 돌았다.
‘웃다니, 웃다니!’
증오의 눈물이 닭똥처럼 떨어져 나왔다. 엄마는 두 팔을 크게 벌려서 나를 안았다. 엄마 냄새가 났다. 마음이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 포옹에 지기 싫어서 엄마의 목덜미를 콱 물어버렸다.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엄마의 목덜미를 꽉 물자 입에서 비릿한 맛이 났다. 나는 피 묻은 입을 목덜미에서 떼고 엄마를 노려보았다. 목덜미를 움켜쥐고 신음하는 엄마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소름이 돋도록 짜릿했고 온몸에 힘이 빠질 만큼 미안했다. 나도 모르게 오줌이 나왔다.
목에서 피가 나던 엄마는 오줌 싼 나를 꼭 안은 뒤 화장실로 데려갔다. 엄마가 만세를 하라고 해서 나는 순순히 팔을 들어 올렸다. 나는 엄마의 배꼽에도 키가 닿지 않았다. 엄마는 옷을 훌훌 벗고 나를 씻겼다. 비누칠을 할 때쯤에 내 마음은 이미 다 풀어져 있었다. 내 팔에 닿는 샤워볼에서 비누 거품이 퐁퐁 솟아올랐다. 그동안 도대체 어디에 갔던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편도선이 다 헐어서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눈썹에 힘을 주고 모가지를 부여잡은 채로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어디..?”
엄마는 단번에 알아듣고 대답했다.
“아빠랑 괌에 갔었어.”
괌이라니.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괌… 괌… 고암… 고아암…’
나는 그날 이후로 더 이상 엄마가 똥을 쌀 때 따라가지 않았다.
그 후로 거의 20년이 지났는데 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직도 편도선이 뻐근하다.
(pp. 5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