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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스바루여 (さらば昴よ)

내 인생의 노래 (32) - 타니무라 신지의 노래가 전하는 삶의 메시지

by 두기노

차가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 유독 신비로운 빛을 내뿜는 작은 별 무리가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평소 일상에서 자주 쓰이지 않는 이름이지만, 우리말로는 ‘좀생이별’, 한자로는 ‘묘성(昴星)‘, 일본어로는 ‘스바루(昴)‘라 불리는 별의 무리가 있다. 천문학에 밝지 않아 찾아보니, 이는 황소자리에 속한 플레이아데스 성단(Pleiades Star Cluster) 가운데 맨눈으로 가장 또렷하게 보이는 6~7개의 별을 가리킨다고 한다. 옛날에는 농사의 시기를 짐작하기 위해 별자리의 위치를 살폈으며, 서양에서도 ‘일곱 자매(The Seven Sisters)’라는 이름으로 전해 내려와 수많은 신화와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또한 먼 항해길에서 길잡이 역할을 하며 이정표가 되어주기도 했다. 다시 말해, 스바루는 언제나 길을 잃은 인간에게 방향과 희망을 일깨워주는 별자리였다.


일상에 휩쓸려 잡다한 생각과 번뇌로 마음이 흐려질 때, 마치 길을 잃은 듯 아득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바른 길을 가리켜 줄 것만 같은 저 별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하지만 도심의 밤하늘에서는 그 별 무리를 찾기조차 어렵다. 더구나 하루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는 고개조차 들어 올려다볼 여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 나는 일본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타니무라 신지(谷村新司)가 1980년에 발표한 명곡 〈스바루〉를 무한 반복하며 듣곤 한다.


'좋은 날의 여행 (いい日旅立ち)', '사라이(サライ)' 등 수많은 명곡을 남긴 타니무라의 음악은 항상 서정적인 가사와 감동적인 멜로디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왔다. 그는 단순한 노래를 넘어, 사람들의 내면에 숨겨진 외로움과 고뇌를 끄집어내고,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특히 그의 대표곡 〈스바루〉는 그 음악적 철학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눈을 감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슬퍼서 눈을 뜨면 황야로 향하는 길밖에 보이지 않는다
目を閉じて何も見えず
哀しくて目を開ければ
荒野に向かう道より
他に見えるものはなし

화자가 그야말로 절망의 더미 위에 서 있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아무리 ‘삶은 고통’이라 하지만, 이처럼 사방이 막힌 듯한 상황 앞에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오는 것은 한숨과 한탄뿐이다.

아아, 부서져 흩어지는 숙명의 별들이여, 부디 조용히 이 몸을 비추어다오
ああ砕け散る運命の星たちよ
せめて密やかにこの身を照らせよ


그러면서도 그는 결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살아내겠다는 간절한 염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는 간다, 창백한 뺨 그대로.
나는 간다, 잘 가라 스바루여
我は行く蒼白き頬のままで
我は行くさらば昴よ


절망과 좌절로 시작된 고뇌의 여정은, 결국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결연한 다짐으로 마무리된다. 노래는 “잘 가라(さらば)”라는 가사로 끝을 맺는데, 작별을 고하는 대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스바루다. 반짝이는 작은 별무리와의 이별이라니. 희망의 아이콘처럼 보이던 스바루가 마치 이중 스파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꿈과 목표를 좇아 살아온 삶에서 느끼는 상실감과 덧없음의 발로(發露)일까? 아니면 이제 더 이상 세속적인 욕망을 좇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일까?


사실 이 마지막 구절은 내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한때 남들이 부러워하는 빛을 좇아 갈구하던 그 길은, 결국 덧없고 헛된 꿈이었던 것은 아닐까? 진정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걷고 있는가?


타니무라는 이 노래를 통해, 삶의 영광과 좌절 속에서도 더 중요한 것은 외부의 빛이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용기임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목표를 품고 희망을 따라 사는 것 자체는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채 욕망만 좇고 있는 것은 아닌지—그 질문이 끝내 마음을 맴돈다.


일본 공휴일인 춘분의날(春分の日)인 오늘, 오전 내내 타니무라 신지의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곱씹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놓인 또 한 번의 선택지에 대해 천천히 생각의 줄기를 잡아 보았다.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후회 없는 길을 선택하길 바란다.



타니무라 신지는 2023년 10월, 향년 75세로 우리 곁을 떠났다. 타니무라, 울고 싶을 때마다 마치 눈물샘을 열어주는 최루제처럼 곁에 있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타니무라 신지 상이 작고한 2023년 그해 4월에 무대에 올라 스바루를 부르던 영상. 데뷔 50년 이상 된 거장이 목소리에 힘이 다 빠진 완전히 할아버지 모습으로 스바루를 부르는 장면은 인생의 덧없음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https://youtu.be/LbJ01CaMiEw?si=9dOLNAiC8jfDga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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