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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무와 사랑일기

내 인생의 노래 (33) - 시인과 촌장의 25년 만의 무대를 시청하고

by 두기노

며칠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반가운 이름을 만났다.

‘25년 만의 재회’라는 부재로 열린 [KBS 전국투어콘서트] 시인과 촌장 편.

썸네일만으로도 마음이 살짝 떨렸다.


영상을 틀자 첫 곡은 <가시나무>였다.

듣고만 있어도 곧 눈물이 날 것 같은 함춘호의 기타 연주에 이어

하덕규가 눈을 감고 독백하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눈을 감고. 노래에 집중했다.

마치 한 편의 시낭송이나 기도문을 듣는 느낌이었다.

그 자체로 마음이 정화된 나머지

감동의 여운을 더 느끼고 싶어 눈을 계속 감고 있었다.

https://youtu.be/J6ErPgp-Hw0?si=a1Ey_Unq1_33AAqW


고등학교 시절,

독서실에서 공부할 때 심야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오던 ‘시인과 촌장’.

맑고 투명하면서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그들의 음악으로

막연히 불안하고 힘들었던 마음이 얼마나 많이 치유받았는지 모른다.


거의 모든 곡을 작사-작곡하고 노래까지 불렀던 하덕규,

그는 시인과 가수의 경계에 서 있던 사람이다.

끊임없이 내면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질문하고 또 성찰하며,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던 사람이다.


함춘호,

그는 말보다 기타로 감정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하덕규의 시적 언어가 공중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손끝으로 단단히 붙잡아 주는 이였다.

그의 연주가 없었다면 하덕규의 아름다운 곡들이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공감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지금은 어느 정도 경제적인 풍요도, 마음의 여유도 생겼고

또 마음의 근육도 단단해진 터라

이젠 내면의 고민이나 갈등이 많지 않으며,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는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마음의 번뇌가 끊이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욕심은 많았지만 정작 나는 내 마음을 잘 알지 못하던 때.

자존감은 낮아 사소한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자주 흔들리던 시절.

그때 이 노래 <가시나무는> 내게 조용한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가시나무>가 내면의 복잡함과 불안을 극복하려는 성찰의 노래라면,

시인과 촌장의 또 다른 백미 <사랑일기>는

지치고 힘들어도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삶에 대한 따뜻한 찬가이다.


별것 없는 일상이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조용한 응원이자,

스스로에게 건네는 다짐이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고마움을 느끼는 모든 순간들에,

고독하지만 결코 외롭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랑해요”라고 조용히 적어 내려가는 노래이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날으는
새들의 날갯죽지 위에
첫차를 타고 일터로 가는 인부들의 힘센 팔뚝 위에
광장을 차고 오르는 비둘기들의 높은 노래 위에
바람 속을 달려 나가는 저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피곤한 얼굴로 돌아오는 나그네의 지친 어깨 위에
시장어귀에 엄마품에서 잠든 아기의 마른 이마 위에
골목길에서 돌아오시는 내 아버지의 주름진 황혼 위에
아무도 없는 땅을 홀로 일구는 친구의 굳센 미소위에

수없이 밟고 지나가는 길에 자라는 민들레잎사귀에
가고 오지 않는 아름다움에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는 소녀의 겨울밤차 유리창에도
끝도 없이 흘려만가는 저 사람들의 고독한 뒷모습에

“사랑해요”라고 쓴다


https://youtu.be/6sBHAkhrNck?si=_j2JfPPFhlQJBMXd


25년 만에 다시 선 무대.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시인과 촌장의 노래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깊어지고, 더 고요해진 느낌이다.


노래를 몇 번이고 반복해 듣다 보니,

문득 내가 지향해 온 삶의 방식이 조금은 인정받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내 마음을 조용히 바라보기.

오늘을 살되, 꿈을 잃지 말기.

매 순간 감사하기.

인간관계에 집착하지 않되, 사람에 대한 온기를 잃지 않기.


하덕규 님, 함춘호 님, 좋은 음악을 만들고 들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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