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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노 Dec 31. 2023

옛사랑

내 인생의 노래 (8)


대충 40대 중반 이후 연령대 사람들에게 이문세가 빠진 ‘청춘’이란 게 존재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지금까지 살면서 음원을 가장 많이 들은 가수가 이문세이지 아닐까 싶다. 나는 행복한 사람, 파랑새, 난 아직 모르잖아요, 소녀, 이별이야기, 빗속에서, 사랑이 지나가면, 광화문연가, 깊은 밤을 날아서, 밤이 머무는 곳에, 그녀의 웃음소리뿐, 휘파람,  끝의 시작, 붉은 노을 등등. 좋아했고 지금도 즐겨 듣는 노래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잘 알려졌다시피 그의 히트곡 대부분은 이영훈이라는 영혼의 파트너가 있었기에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이영훈이 만든 수많은 이문세의 노래 중에서 늘 이맘때 더욱 생각나는 곡이 바로 “옛사랑”이다. 대학교 2학년이던 1991년 겨울에 나온 이문세 7집에 수록되어 있다.


코끝이 싸할 정도로 기온이 내려간 겨울에는 늘 누군가가 그립다. 눈이라도 내리게 되면 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는 이 노래를 다양한 버전으로 반복해서 들으며 정처 없이 걷는다. 지난날의 풋풋했던 추억, 못내 아쉬웠던 순간들,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들, 고마웠던 사람들… 잔잔한 시냇물처럼 흐르는 이런저런 상념에 몸을 맡기며 돌아다니다 보면, 가족들이 보고 싶어지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곤 한다. 마음속에 흐르는 눈물과 후회, 그리움과 고마움으로 내 마음의 근육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음을 확인하며 귀갓길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곤 한다. 이쯤 되면 내겐 겨울의 의식이나 다름없다.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텅 빈 하늘 밑 불빛들 켜져 가면
옛사랑 그 이름 아껴 불러보네

찬 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우다
후회가 또 화가 난 눈물이 흐르네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인가


서울은 올해만 벌써 몇 번의 폭설이 내렸다는데, 도쿄에선 이번 겨울 동안 눈을 볼 수 있을까? 그 옛날 온 세상이 눈으로 덮인 날엔 광화문에서 내려 경복궁 옆 돌담길 따라 삼청동까지 걷곤 했다. 걷다가 어깨 위에 쌓인 눈을 툭툭 털고 들어간 커핏집에선 클래식 음악이 흐르곤 했다. 그런 날 이렇게 걸어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가사라 이 노래 “옛사랑”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 것 같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 그야말로 눈이 내리는 건지 올라가고 있는 건지 헷갈린 경험을 해 본 사람으로서 이영훈의 놀라운 관찰력에 감복할 따름이다.


흰 눈 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옛사랑 생각에 그 길 찾아가지
광화문 거리 흰 눈에 덮여가고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많은 이들이 얘기하지만, 인간관계든 뭐든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한 번에 모두 소진해 버리기보다 좋을 때 아끼고 적당히 남겨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내가 늘 지향하는 ‘외롭지 않되 고독한 삶‘으로 조금씩 더 나아가고 있다. 이 노래 “옛사랑”을 들으며.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 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넘쳐
눈 녹은 봄날 푸르른 잎새 위엔
옛사랑 그대 모습 영원 속에 있네


이 곡을 만들어 주신 故이영훈 님과 노래를 불러주신 이문세 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2023년 마지막 날. 이제 더 이상 거창한 자기반성과 새로운 계획을 세우지는 않지만, 올 한 해 나와 가족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잘 살았음에 감사할 뿐이다. 우리는 내년에도 소소한 일상 속에서 충실하게 한 해를 살아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 삶에 대한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사랑은 내년 이 맘 때는 또 하나의 “옛사랑”이 되어 있으리라.


https://youtu.be/A8OAOFdRSK4?si=4huzEEjQDyOxYr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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