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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노 Jan 06. 2024

기다려 줘 (김광석 28주기를 추모하며)

내 인생의 노래 (9)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작사가로 알려진 류근 시인의 페북 글을 보고 오늘이 김광석 28주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가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났을 때의 내 나이보다 더 많은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제는 기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노래 덕에 얼마나 많은 위로와 울림을 받았는지를 생각하니 뭔가 이대로 있을 순 없었다. 노트를 꺼내 이것저것 끄적이다 유튜브를 듣고 이런저런 검색을 하며 조금이라도 마음의 부채감을 떨쳐보려다 보니 토요일 오전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이 가기 전에 광석이 형에 대한 뭔가 짧은 추모의 글이라도 남기려다 보니 정리가 안 될 정도로 떠 다니는 생각들이 많았다.  


대학 다니던 시절, 먼발치에서 노래를 부르던 그를 본 것은 아마 서너 번 되는 것 같다. 가장 최근의 기억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한 해전인 1995년 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대학로 학전소극장에서 1000회 공연 거의 막바지를 보러 갔던 때이다. 정규좌석 외에도 사람들이 훨씬 많이 들어와 스피커 놓인 자리 제외하고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없이 공연장은 가득 찼었다. 김광석 형이 인파를 헤치고 입장한 후 ”날도 더운데 왜 이리 많이들 오셨나요“라며 특유의 힘없는 목소리로 내심 기뻐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날의 공연이 너무 좋아 앞으로는 매년 보러 와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아쉽게도 이는 실현되지 못했다.


김광석은 결은 좀 다르지만 이문세와 더불어 그 시절 내 또래 청춘들의 삶에 아마도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가수이다. 얼마나 많은 그의 노래들이 우리를 울렸고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주었던가. 좋아하는 노래를 딱 한곡만 고르는 것만큼이나 별로라고 생각하는 노래를 떠올리는 것도 너무 어려운 그의 수많은 명곡들 중엔 내게 있어 “인생 노래”가 될 만한 사연 있는 곡들이 많다.

용기가 없어 자신 있게 행동하진 못했지만 숭고한 가치에 대한 비장함과 결연함을 느끼게 해 줬던 노찾사 시절의 <이 산하에> <광야에서> <그루터기>

대학생이 되면 대학로나 신촌을 실컷 쏘다니고. 싶다고, 공부하다 말고 딴생각할 때 주로 듣던 동물원 시절의 <거리에서>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

MT 가서 누군가 기타 치며 이 노래 부르면 클라이맥스에서는 다 같이 떼창 하던 <사랑했지만>

서른 되기 전부터 그리고 서른이 한참 지난 지금도 늘 흥얼거리고 있는 <서른 즈음에>

군대도 못 간 주제에 진짜 이등병이 된 것 같이 마음이 먹먹해지곤 하던 <이등병의 편지>

지치고 힘든 날이면 나만의 동굴에서 반복해서 듣게 되는 <혼자 남은 밤>

대학 시절 친구들과 막걸리 마시던 주점에서 꼭 신청해서 듣던 <그날들>

변변한 연애 경험도 없으면서 누군가를 잊고 헤어지는 행위에 일종의 동경심을 갖게 만들었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등등

그의 수많은 명곡들 중에서도 내가 특히 좋아했던 노래는 그의 솔로 데뷔곡 <기다려 줘>이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것은 학력고사를 보고 결과를 기다리던 1989년 12월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3년에 걸쳐 총 네 번의 입원과 두 번의 대수술,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일까지 겪다 보니 대학시험을 무사히 치른 것 자체가 내겐 기적과도 같았다. 삶이 너무 아프고 암울하다 보니 오늘을 무사히 살아갈 힘도 부족해서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삶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내 마음속에는 아마도  늘 울고 있는 아이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저 멀리서 그 아이에게 ‘조금만 더 견디고 기다려’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동안 복받쳤던 울음이 터져버렸다. 이제 내게도 좋은 일만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소리 죽여 참 많이 울었다. 내 마음속 나와 처음으로 대면하고 어색하게 대화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늘 코끝이 찡해진다.

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대 마음에 이르는 그 길을 찾고 있어
그대의 슬픈 마음을 환히 비춰줄 수 있는
변하지 않을 사랑이 되는 길을 찾고 있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대 마음에 다다르는 길
찾을 수 있을까 언제나 멀리 있는 그대
기다려줘 기다려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김광석 형! 형을 기억하고 여전히 형의 노래를 좋아하는 수많은 팬들의 한 명으로서 오늘 또 형의 기일을 추모합니다. 사는 것은 늘 힘들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별 탈 없이 왔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형의 노래가 많은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고, 언제나 고맙습니다!

https://youtu.be/O4KZ0u46pTg?si=_VhQmqwddp2Nt7e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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