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F AND ONLY IF Aug 18. 2019

친구의 첫사랑은 양성 피드백이었다

하울링, 옥시토신, 그리고

저는 남녀공학 기숙사 학교에 다녔습니다. 취침 점호가 끝난 뒤에는 사감 선생님의 눈을 피해, 몰래 방을 옮겨 다니며 친구들과 잡담을 하는 게 하루 일과의 마무리였죠. 이야깃거리는 별로 많지 않았습니다. 핫한 래퍼의 신곡, 선생님 뒷담화, 그리고, 가장 흥미진진했던, 좋아하는 여학생들 이야기.


제 친구는 짝사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과도해 보일 정도로, 오늘 있었던 그 여학생의 모든 행동과 모습에 대해 설명하고는, 항상 '좋아 죽겠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며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며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들어 그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봤을 땐, 그거 양성피드백이야."



양성 피드백(Positive feedback)이란, 시스템의 출력이 입력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피드백을 의미합니다. 마이크를 스피커 가까이 가져다 대면 '삐-'하는 아주 큰 소리가 나는 것을 본 적 있으실 겁니다. 마이크에 들어간 조그만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몇 배로 증폭되어 나오고, 그 소리가 다시 마이크로 들어가 증폭되는 과정을 순간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스피커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소리가 나오는 것이죠. 이것이 양성 피드백입니다.

하울링 현상

또한, 임산부의 출산 시 뇌하수체 후엽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 분비 작용도 양성 피드백에 해당합니다. 분만 시기가 되면 옥시토신이 분비됨으로써 자궁의 수축을 촉진하고, 이것이 진통을 유발하게 됩니다. 이 진통은 다시 옥시토신의 분비를 유도함으로써 더욱 강하게 자궁을 수축시킬 수 있도록 합니다. 분만을 성공시키기 위해 인체가 개발한 획기적인 시스템이죠. 일상생활에서 예시를 찾아본다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선순환과 악순환 모두가 양성 피드백에 해당할 수 있겠습니다. 좋은 결과가 다시 좋은 원인이 되거나, 나쁜 결과가 다시 나쁜 원인이 되는 것이니까요.


저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마음도 양성피드백과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묶고 온 그 여자애의 머리가 내 마음속에 새겨진 다음에는, 그 '새김'을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게 되는 것. 분명 사소한 일인데도, 그로부터 피어난 내 생각이 다시 내 생각을 먹으며 거대하게 자라나는 것. 저는 그 친구의 모습에서 양성 피드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 친구가 실제로 좋아했던 것은 그 여자애가 아니라, 그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의 생각이 빚어낸 이미지에 불과한 것 아니었을까, 하는 조금은 삭막한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은희경 작가님의 '새의 선물'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이형렬의 눈을 쳐다보고 그의 이마를 비비는 것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다. 이모가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또 비벼대는 것은 자신의 젊음과 연애감정이었다."


설령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내 안의 양성 피드백에 불과한 것이라 할지라도, 저는 그것들이 마음에 듭니다. 아마도 저는 감정의 거짓말에 유쾌하게 속아 넘어 가 줄 수 있는 여유를 찾고 있나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반항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