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캐나다 가지 않을래?"
2003년 늦여름 즈음, 엄마가 말을 꺼냈다. 캐나다에서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하신다는 친척의 제안이었다. 사촌들도 모두 다녀왔고, 지금쯤 가야 영어를 배우기에 딱 좋은 나이이니 좋은 기회일 것이라고.
매년 방학마다 외국에 나간 운 좋은 꼬마였던 나는 그 때부터 여행이 좋았다. 비행기의 넓은 좌석에 앉아 구름 위에 눕는 기분은 어떨까, 구름 사이를 뛰어다니면 어떨까 기분 좋은 상상도 해보았고, 친절한 승무원들이 건네 주는 기내식은 지상에서 먹는 식사보다 왠지 더 맛있고 근사하게 느껴졌다. 이/착륙 할 때의 먹먹함도 코를 꽉 잡고 침을 꼴깍 삼키며 풀어낼 만큼, 여행은 친숙하고 또 설레는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영어 학원 선생님이었던 엄마의 도움과, 학습지 영어로 영어와도 친숙했고, 2년 전 여름방학에 잠깐 미국에서 방학 학교를 다니며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다. 학교에서 영어를 매우 잘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무슨 용기였는지 몰라도 겁 많은 나는 흔쾌히 좋다고 말했다. 영어도 좋았고, 비행기도 좋았고, 여행도 좋았으니까. 가족, 특히 엄마와 처음으로 5개월이나 긴 시간을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10월 초, 학교에 체험 학습 신청을 하고 나는 캐나다의 작은 프로빈스인 Nova Scotia로 향했다.
출국하던 날, 우리 가족은 모두 엉엉 대성통곡을 했다. 5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 그 때에는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급하게 mp3에 다운 받은 토이의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들으며 혼자 앉은 비행기 좌석에서 서럽게 울었다. 그 후에도 적지 않은 밤들은 그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터뜨렸고, 지금도 난 그 노래를 들으면 아련한 전 남친이 아닌 엄마를 떠올린다.
당시 나는 만 12세 이하였기 때문에 모든 비행기와 공항에서 승무원과 항공사 직원이 나를 동행했다. 그들의 보살핌 아래 잘 먹고, 잘 자고, 아마 토론토였을 공항에 경유하기 위해 도착했다.
한국어 ㅓ 발음을 u로 바꾸면, 캐나다인들은 ㅜ로 읽는다. 신기하게 바뀐 내 이름을 부르던 에어캐나다의 직원이 나를 마중 나왔다. 입국심사도 따로 사무실 뒷편에서 받고, 서류만 검토 받고 금방 통과. 내가 어리기도 하고 공항이 너무 넓기도 해서 공항에서 우리가 흔히 보는 카트를 타고 다녔다.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이 될 카트 탑승에 너무 신이 나 쌩쌩 공기를 가르며 달리던 느낌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Nova Scotia의 수도, Halifax로 가는 작은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 곳에서도 가장 어린 승객이라 승무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타이밍이 절묘하게 속이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마시면 속이 쑥 내려가는 사이다를 요청하고 싶었으나, 칠성 사이다 밖에 몰랐던 나는 짧은 영어로 cider가 필요하다, 배가 아프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들은 사이다와 비슷할거라며 진저에일을 건넸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진저에일. 약간 쌉싸름한 뒷맛을 빼면 사이다와 거의 같은 맛이었다. 그렇게 긴장이 조금씩 풀리고, 어둠이 내려앉은 캄캄한 밤 공기 속 몇 안되는 Halifax의 불빛을 보며 무사히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으러 나간 곳에 드디어 5개월 동안 나와 함께할 host family 부부가 나와 있었다. 회색 머리에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아저씨와 금발 머리에 초록색 눈을 가진 키가 큰 아주머니. 그들은 나에게 편하게 mom & dad라고 부르라고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런 호칭은 다른 홈스테이 가정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다들 엄마 아빠의 이름을 불렀다. 아마 더 빠르고 편하게 이 가정에 적응하라는 둘의 배려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곧 나의 캐나다인 엄마 아빠로 빠르게 받아 들이고 가까워질 수 있었다.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약 한시간 정도. 모든 거리에 가로등이 빽빽이 찬 서울과는 달리, 가는 길은 매우 어둡고 조용했다. 별이 많이 보여서 신기했다. 나는 짧은 영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금방 집에 도착했다. 캐나다의 흔한 2층 가정집, 집과 마주 보고 있는 엄청나게 큰 헛간, 옆으로는 매우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앞으로 5개월 동안 나의 집이 될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