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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숙 Dec 31. 2019

이상했다.

이상했다. 올해 내내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보이는 거다. 내가 왜 이러지? 작년까지만 해도, 아이를 키우는 게 내 인생 최대의 관문이라 할 정도로 힘들고 지쳤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출산 후 조리원에서 잠시 뛰어내릴 상상을 했었지. 아이를 낳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말이다.



의 아들은 '특급 진상'유형이라,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음을 한탄했었다. 아이의 넘치는 에너지에 기가 다 빨려, 마음껏 귀여움을 즐기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돌아오지 않을 순간마다, 아이의 행동이나 표정을 마음에 담으려 하기보다는 육아의 조급함에 전전긍긍했었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매일 최선을 다해 놀이 방법을 바꾸며 함께 했어도. 한 발자국 물러나 가만히 바라보며 "이쁘다", "사랑스럽다"를 중얼거렸던 기억은 희미하다.




런데, 올해 단단히 무언가 이상했다. 아이 엄마가, 자기 자식 보고 사랑스럽게 여기는 게 이상할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했다.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아들을 향한 눈빛부터 하트를 마구 발사하고 있던 거다.

올해 남편의 유행어가 " 나를 쫌 그렇게 이뻐해 봐라 응! 주원이만 이뻐하고."였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순간에도 아이 뺨에 뽀뽀를 하던가, 엉덩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다섯 살, 결코 이쁜 짓만 하는 나이는 아니다. 말도 얼마나 잘하는지, 따박따박 말대꾸를 할 때도 있다. 말대꾸를 할 때 조차도 목소리가 너무 귀여운 거다.

 '나 미쳤나 봐. 화가 도통 나지를 않아.' 또래보다 몸집이 크고 근육이 단단한 아이에게서, 아직은 아기 같은 얇고 맑은 목소리가 나오면 계속 더 듣고 싶어 졌다.

"그래서?", "엄마한테 더 말해줘." 한마디라도 놓칠까 봐 집중해서 귀 기울였다. 반짝반짝한 눈으로 쳐다보며 맞장구쳐주니, 아이도 신이 나 재잘재잘 떠들었다. 노래 부르 듯 리듬 있는 경쾌한 말 높낮이와 "~했더라구."라고 표현하는 말투까지 하나라도 놓칠 수 없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도톰한 입술과 함께 씰룩이는 부드러운 볼 살에 내 볼을 비비고,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굵고 거친 머리카락과 땀이 섞여 손가락 사이로 스친다. 아, 만져지는  동그란 두상도 사랑스럽다. 정신 차리고 보면 아이의 이마를 또 쓰다듬고 있었다. 코 밑 하얀 솜털과 손가락에 난 검은 털 몇 가닥도 소중하고 앙증맞다. 손깍지를 껴보기도 하고, 아이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소리도 들었다. 




아들은 이제 컸다고 뽀뽀도 아무 때나 안 해주고, 안으려 해도 22kg 무게 압박에 내가 다 휘청거린다. 어린이집 여자 친구에 대해 "비밀!"이라며 입을 다물 줄도 안다.
갑자기? 아이 사랑에 홀딱 빠진 나에게,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고 있는 친구가 시니컬하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네가 귀여워하는 모습, 내년 여름쯤이면 이제 싹 사라져. 무뚝뚝한 남자아이 모습이 나온다니까."




이럴 수가! 내년 여름, 얼마 안 남았잖아. 조바심이 들었다. 아이에게 "주원아, 그 귀여움 잃어버리지 마. 엄마 그러면 못 살아." 라며 질척거리는 내 모습이 놀랍다. 아이 때문에 지쳐 못 살겠다 중얼거리던 내가, 귀여운 모습이 사라질까 걱정하다니.

내 걱정에 "엄마, 어쩌냐. 나 이제 몸에 털 날 텐데."라고 답하는 아들이 엉뚱하게 귀여워서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아이의 별 것 아닌 행동에 서서히 화가 오름을 느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분노였다. 마법이 서서히 풀리고 있는 걸까.
마법이기보다는, 그만큼 나도 여유와 육아 짬이 생겼던 것 같다. 나 자신을 믿지 못해 이것저것 정보를 알아보며, 완벽한 엄마 역할을 원했었다. 난 죽어라 노력하는데 아이는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허무함에 화가 치밀어 올랐었다. 차차 욕심과 책임감을 벗어던지려 노력하고, 마음을 내려놓자 아이의 모든 것이 더 소중하게 반짝였다. 물론 매일 아름답게 마무리하기란 어렵기에, 투닥거리기도 했다.





 
곧 새로운 해가 올 것이고, 친구 말대로 여름쯤부터 말문을 닫는 아들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두렵지 않아. 아이를 한 발자국 뒤에서 바라보며 있는 그대로 원 없이 사랑했고, 귀찮아할 만큼 표현했으니 말이다. 아낌없이 쓰다듬고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나 자신도 살살 쓰다듬을 줄 알게 되었다. 평온하기 힘든 육아, 엄마 역할에 부드럽지만 단단한 힘이 생기는 중이라 믿는다.


엄마가 처음인 엄마와, 아들이 처음인 아들의 2020년은 어떨까. 나의 시간이 아이의 시간과 겹쳐 함께 흐른다는 것. 기대된다. 이왕이면 아들의 귀여움도 오래도록.



PS.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 이 글을 읽어 주신 감사한 분들께 존경의 박수를 보내요.

고생 많으셨어요.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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