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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선숙 Mar 11. 2021

나만의 안식처

이른 아침, 학교 버스에 탄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파트 단지로 돌아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꾹 눌렀다. 7층. 우리 집인 2층을 단숨에 지나쳤다. 익숙하게 701호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바로 문이 열렸다. 누군지 묻지도 않는다. 왔어? 친구 오의 목소리와 함께 돌쟁이 둘째가 보행기를 타고 달려왔다.



중국에 온 지 넉 달째.

맛있고 멋있고 화려한 곳을 찾아 열심히 다녔다. 그중에 제일 뻔질나게 드나들면서도 질리지 않는 곳이라면, 단연 친구 오의 집이다. 이곳은 시시하지만 소중하다.

그녀는 중국에서 만난 동갑 친구로, 알고 보니 같은 전세기를 타고 입국한 사이였다. (일명 중국 전세기 동기라 부른다)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층만 달라서, 잠옷 입고도 서로의 집에 넘나들 수 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해외에서 한국말로 말할 친구가 있다는 것. 더군다나 나와 비슷한 결을 가졌다는 것. 이보다 든든한 일이 또 있을까.



보통 아침에 원시적인 상태로 701호를 올라가서, 맥심 커피 믹스를 마신다. 커피를 마시면서 별별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이의 국제 학교 적응 문제, 영어 고민, 나의 늘지 않는 중국어, 학교 엄마들을 사귀는 일,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연락의 어려움, 글쓰기를 유지하는 법, 남편에게 섭섭했던 일, 한국에 돌아가면 하고 싶은 일...... 대화 중간중간마다, 친구 아가에게 눈도 찡긋해주고 손잡고 거실 한 바퀴를 돌기도 한다.
 


우리 집과 같은 구조이지만 그녀 집만의 느낌이 있다. 아가의 부드러운 살결 냄새가 섞인 공기, 낮잠 시간의 고요함, 거실 한가득 깔린 하얀 놀이 매트, 인형과 장난감들, 젖병과 분유. 모두 한동안 내가 잊고 지냈던 익숙한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편안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안쓰러워진다.

친구 오의 “한국 가고 싶어!”라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서로 한국의 집이 그리운 이유는 미묘하게 다르나, 마음은 같다. 친구 오의 집에서 이러한 마음들이 오고 간다.

어떤 날은 내가 한없이 가라앉고, 다음 날은 그녀가 울적하고, 둘 다 한껏 기분 좋은 날도 거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떡진 머리와 늘어난 옷을 입고 30초 만에 도착할 수 있는 집, 별말 없이 문을 열어주는 친구 오가 있는 집, 나에게 701호는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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