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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영 May 19. 2019

‘멕시코 가방’의 진실 Part 1

<일요일은 사진이 좋다>

차라리 상자에 가까운 허름한 가방 안에 동그랗게 말린 필름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가방의 덮개 안쪽 격자무늬 테두리 안으로는 각 필름 별로 촬영된 장소가 깨알같이 적혀 있다. 2007년 겨울,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국제사진센터(The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가 같은 모양의 가방 3점을 최초로 공개하자, 사람들은 이를 ‘멕시코 가방(The Mexican Suitcase)’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가방의 출처가 멕시코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멕시코 가방 3점에서 발견된 총 126 롤의 필름(약 4500장으로 추정) 중에 전설의 종군사진가 로버트 카파(Robert Capa)가 1930년대 촬영한 스페인 내전에 대한 기록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왜 스페인 내전 때 찍은 사진이 반세기도 훌쩍 넘은 2007년에 내전이 벌어진 스페인도 아니고 카파의 최종 국적이었던 미국도 아니고 멕시코에서 발견된 것일까?


Robert Capa ©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여기서 잠깐. 스페인 내전 하면 떠오르는 일명 ‘쓰러지는 군인(The falling soldier)’ 사진도 로버트 카파가 찍은 것 아니던가? 스페인 내전에서 파시즘 세력에 맞서 싸우던 공화국 정부군 군인이 총에 맞아 즉사하는 장면을 담은 이 충격적인 사진으로 로버트 카파는 20세기 종군 사진의 전형(archetype)을 구축했다는 평을 듣게 된다.


로버트 카파의 100주년 생일을 기념하여 국제사진센터에서 발표한 카파의 유일한 육성 파일을 들어보면, 로버트 카파는 이 사진을 찍을 당시 참호 안에서 카메라를 머리 위에 두고 뷰파인더를 보지도 않고 셔터를 눌렀다고 했다(참고자료 1: Ranjit Dhaliwal, 2013).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사진은 끊이지 않는 조작 의혹에 휩싸이게 된다.


필립 나이틀리의 저서 <첫 번째 사상자>

최초의 조작 의혹은 필립 나이틀리(Phillip Knightley)가 1975년 발표한 그의 저서에서 시작되었다. 필립 나이틀리는 그의 저서에서 당시 남아프리카 기자였던 겔러거(O.D.Gallagher)가 로버트 카파와 호텔방을 같이 쓰면서 카파에게 들은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며칠간(전투 없이) 너무 조용해서, 카파와 다른 일행들이 사진 한 장 못 찍었다며 (파시즘 세력에 맞섰던) 공화국 정부군에게 불평을 했고, 한 정부군 관료가 몇몇 병력을 보낼 테니 근처 참호에서 군사 훈련하며 연출사진을 찍어보라고 했다(참고자료 2: Kim Sbarcea, 2008)."


연출사진? ‘쓰러지는 군인’ 사진이 연출되었다?


로버트 카파의 전기(傳記)를 쓴 작가 리쳐드 웰런(Richard Whelan)에 따르면, 겔러거 기자가 훗날 또 다른 작가 죠지 르윈스키(Jorge Lewinski)와의 인터뷰에서 카파가 연출사진으로 찍은 병사는 앞서 필립 나이틀리에게 진술한 공화국 정부군 소속이 아니라 프랑코의 파시즘 세력 병사였다고 진술을 번복했다(참고자료 3: Richard Whelan, 2003). 겔러거 기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져서 조작 의혹은 잠잠해지는 듯 보였다.


아만다 바일의 저서 <플로리다 호텔>

조작 의혹에 다시 불씨를 지핀 것은 <호텔 플로리다>의 저자 아만다 바일(Amanda Vaill)이다.

“스페인 내전 당시 가장 치열했던 최전선에 종군기자 출입이 불가능했고, 대부분 군인들에게 부탁하여 적군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들판을 뛰어가게 하거나, 총구를 겨눌 적군이 아무도 없는데도 괜히 탄환을 장전하게 연출하여 촬영하는 경우가 많았고, 출입 통제선 뒤에서 피신하는 일반인들을 찍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참고자료 4: Amanda Vaill, 2014).”



Gerda Taro ©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Gerda Taro ©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매그넘 홈페이지에서 찾은 위 두장의 사진들은 로버트 카파가 '쓰러지는 군인’ 사진을 찍은 시기와 비슷한 시기(혹은 같은 날 촬영한 것일 가능성도 있음)에 함께 취재에 임했던 게르다 타로가 찍은 사진들이다. 저자 아만다 바일의 말이 사실이라면 위 사진들이 실제 전투 장면이 아닌 연출된 사진이라는 것인가?


'쓰러지는 군인’ 사진이 정말 연출되었다면, 카파는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는데 왜 머리 위로 카메라를 올려 뷰파인더를 보지도 않고 사진을 찍었다고 했을까? 혹시 참호 안이 너무 깊숙하다 보니 화각이 확보되지 않아서였을까? 연출사진이 사실이라면 사진 속 군인은 실제 촬영 후 벌떡 일어나 부대로 복귀한 것은 아닐까?


작가 아만다 바일에 따르면, 군인들이 노닥거리면서 달리고, 총을 쏘고, 미친 듯 연기하고, 웃고 떠드는 모습을 카파가 촬영하는 와중에, 파시즘 세력 스나이퍼의 실제 조준 사격이 있었고 군인 한 명의 가슴을 관통했다고 한다(참고자료 5: Amanda Vaill, page 59, Hotel Florida 2014).


결국 공화국 병사 한 명이 연출사진 촬영 중 스나이퍼가 쏜 총에 실제로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카파가 촬영한 것이라는 아만다 바일의 말은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또 다른 증언을 들어보자.


많은 전문가들은 1936년 9월 5일경 공화국 정부군이 파시즘 세력과 격전을 벌이던 스페인에 위치한 세로 무리아노(Cerro Muriano)라는 곳에서 로버트 카파가 이 사진을 촬영했다고 믿어왔다. 카파의 작품 배급을 맡고 있는 매그넘 에이전시 역시 1996년 보도자료를 통해 당시 세로 무리아노에서 사망한 군인의 신원이 확인되었다며 카파의 사진이 진실이라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았다(참고자료 6: Mathieu de Taillac, 2016). 참고로 사망한 군인의 신원은 페데리코 보렐 가르시아(Federico Borrell García)로 알려져 있다.

 

‘쓰러진 병사' 사진의 배경으로 알려진 세로 무리아노의 실제 모습. 100년 넘은 울창한 숲으로 이뤄져 '쓰러지는 병사' 사진처럼 사실상 탁 트인 언덕은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스페인 파이스 바스코 대학 호세 마누엘 수스페레기(José Manuel Susperregui) 교수는 사진 속 군인이 쓰러진 뒷배경과 실제를 비교 대조해 본 결과, 촬영된 장소는 당초 알려진 세로 무리아노가 아닌 세로 무리아노로부터 약 50km 떨어진 에스페호(Espejo)라고 밝혔다.


수상한 점은 카파가 ’쓰러지는 군인’ 사진을 찍은 시기로 알려진 1936년 9월에는 에스페호 지역에서 이렇다 할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스페호 출신 생존자로 1936년 당시 아홉 살이었던 프란시스코 카스트로(Francisco Castro)는 한 스페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36년 9월은 마지막까지 총성 한번 들리지 않았고, 당시 군인들이 거리를 산책하며 동네에 가장 맛있는 햄을 먹으며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호세 마누엘 수스페레기 교수의 모습

수스페레기 교수는 에스페호 출신 생존자 카스트로의 증언에 힘을 실었다.

"연출 사진 촬영을 하다가 스나이퍼의 총에 의해 사망했다는 설은 고려할 가치도 없다. 우선 반대 진영 전선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포격도 부정확했을 것이며, 당시 스나이퍼가 전쟁에 투입되었다는 어떠한 기록 문서도 이미지 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참고자료 7: Larry Rother, 2009).”


수스페레기 교수의 말대로 애초에 촬영 장소가 세로 무리아노가 아닌 에스페호였다면, 사망자 신원으로 밝혀진 페데리코 보렐 가르시아 역시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당시 스나이퍼가 투입된 역사적 기록이 없는 걸로 보아 이 사진 속 주인공은 사망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제사진센터 큐레이터 신시아 영

로버트 카파의 사진을 소장하고 있는 국제사진센터의 큐레이터 신시아 영(Cynthia Young)은 수스페레기 교수의 주장을 일부 인정하는 모습이지만, 스페인 내전은 로버트 카파가 처음 참여한 전쟁이었던 점에 주목한다.

“'쓰러지는 군인' 사진의 촬영된 장소가 엇갈린다는 주장은 강력하고 심지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당시 전쟁에 처음 참여한 로버트 카파는 그의 사진에 캡션을 거의 달지 않았다. 아마 카파는 촬영한 장소를 정확하게 기억 못 했을 것이고, 파리에 있는 그의 에이전트들이 필름을 현상하면서 추측해냈으리라 본다(참고자료 8: Larry Rother, 2009).”


로버트 카파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쓰러지는 군인’ 사진에 대해서 말을 아꼈다고 전해진다. 연출사진을 촬영하다 의도치 않게 죽음을 맞이한 병사를 목격한 충격과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어차피 가벼운 연출 사진 촬영이었고 실제로 아무도 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한 가지 더 의아한 점은 ‘쓰러지는 군인’ 사진의 네거티브 필름 원본이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수차례 언론이나 전시회 등에서 봐온 이 사진은 모두 빈티지 인화물의 재복사본에 지나지 않는다(참고자료 9: Richard Whelen, 2003). 그러던 와중 멕시코 가방이 발견된 것이다. 혹시 가방에서 발견된 4500여 장의 필름 속에 '쓰러지는 군인' 필름 원본이 숨어있지 않을까?


Part2에서 계속...


*** 참고자료 번역에 의역 오역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사실 확인을 원하시면 링크 원문 참고해주세요. 상기 내용 중 잘못 기술된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충분히 검토 후 수정하겠습니다.


<일요일은 사진이 좋다> 첫 번째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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