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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영 Sep 13. 2019

LAX

“LA에는 무슨 일로 왔어요?”

미국 이민국 심사장이다. 내 앞에 험상궂은 인상을 한 흑인 심사관이 앉아 있다. 그런데 왜 그의 입에서 한국말이 흘러나오지? 한국에 돌아갈 날이 다가오니 이제 환청이 들리나?

“I’m sorry?”

그러자 흑인 심사관이 되묻는다.
“한국말하는 흑인 처음 보나요? Do you see a black guy for the first time who can speak Korean?”

“네 처음 뵙네요. How many years have you studied Korean?”

한국말과 영어가 뒤섞이는 대화가 오가기 시작한다.


“엄청 공부했어요 four years 4년 됐어요. 한국인 친구 많아요. 왜 놀래요? 제가 좀 더 놀라게 해 드릴까요?”

“네?”

“한국 노래도 좀 해요 들어볼래요? Do you know pamcha?”

“팜차?”

“인순이 몰라요? You don’t know Insooni?”

곧 그의 노래가 시작됐다.

“멀리 기적이 우네
  나를 두고 떠나간다네
 이젠 잊어야 하네
 잊지 못할 사랑이지만”

이 악명 높은 미국 이민국 심사장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심사관이 노래를 부른다? 이 차가운 시선으로 가득 찬 미국의 이민국 심사장에서 왜 나는 박장대소를 하고 있는 거지? 이게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것인가?

“미국에는 무슨 일로 왔어요?”

인순이 노래 솜씨도 뽐냈겠다 흥에 넘치는 심사관이 내게 물었다.


“비즈니스 때문에 왔어요. But I have a customer in Nashville only. Can you introduce one in LA?”

나는 왜 이 와중에 이민국 심사관에게 바이어를 소개해달라고 말하고 있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미국 서부 쪽도 좀 뚫어봅시다.

“Give me your business card. I will contact you. 수고하세요~”

정말 정확한 발음의 수고하세요.. 뭐지 이 느낌은.


중남미 출장의 시작과 끝은 늘 LA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일종의 숨 고르기 같은 거다. 산호세 코스타리카에서 LA까지 6시간 15분 비행이었다. 6시간 비행의 여독이 흑인 심사관의 노래자랑 덕에 말끔히 풀리는 느낌이다.

한편, 밤차는 인순이 노래가 아니고 이은하 노래인 것을 호텔방에 와서 알게 되었다. 아무렴 어때.


여기는 미국 로스엔젤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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