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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cky Ha Oct 29. 2019

한쪽 날개를 마저 달다

서귀포시 귀농귀촌 교육 14기 1반 교육생








‘사람은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옳다. 특히나 농촌에서 나고 자란 나는 삶에 지쳐 쉼이 필요할 때 자연의 품속에 들어야만 몸과 마음에 낀 노폐물이 빠지고 새로운 에너지가 다시 차오른다는 편견이 있다.    

 

제주는 대학 졸업여행으로 처음 와봤다. 그때는 제주의 매력이 바다에 있다고 생각했다. 용암이 막 내달려 바다로 뛰어 들어가 식어버린 듯한 검은 바위들의 형상은 이제껏 보아왔던 서해안의 갯벌이나 동해안의 해수욕장과는 사뭇 다른 매력이 있었다. 신혼여행으로 두 번째 온 제주는 바다의 매력이 아닌 낮은 산등성이에 은빛으로 빛나는 억새의 물결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세 번째 엄마의 칠순 가족 여행 때는 ‘에코랜드’와 ‘선녀와 나무꾼’ 같은 테마 공원과 관광지를 돌았다.     


하지만 제주가 나의 영혼을 울리는 매력을 보여준 것은 네 번째 여행부터였다. 40여 년을 살면서 여기저기 생채기 난 내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비로소 숨을 쉬게 한 것은 바로 제주의 ‘숲’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울창한 삼나무 숲과 마치 어릴 적 읽던 동화에나 나올 법한 날 것의 숲을 닮은 ‘곶자왈’은 육지에서의 삶에 지칠 때마다 나를 제주로 불렀다.     


맑은 파란 하늘에 색색의 구름은 육지에서 보던 구름과 달랐고, 불어오는 바람은 깨끗하고 달콤했다. 각박하게 살아가는 도시 생활에 지친 나는 게으르고 느리게 사는 삶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이고 그것을 실현할 곳은 바로 제주라고 믿었다. 그런 마음을 먹고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나는 어느덧 제주에 살고 있었다.    


제주가 내어주는 넉넉한 자연의 품에서 불어 나오는 바람은 마음의 뾰족한 끝을 부드럽게 다듬어 주었고, 숲 깊은 곳으로 한 걸음씩 발을 들일 때마다 막혔던 가슴을 뚫어주는 듯이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제주에 내려와 한 달 한 달을 살아가면서 몸이 다시 건강을 되찾았고 마음이 회복되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사람은 관계를 떠나서도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다. 아무리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과 위로가 크더라도 사람과의 관계가 빠진 삶은 한계가 있었다. 아무런 연고 없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지내는 제주의 삶은 소원하던 삶처럼 단순하고 느렸지만 외로웠다. 또 농사에 대한 로망이 있었음에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주변에 딱히 조언을 구할 사람도 없어서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관계와 정보에 목말라하던 나에게 샘물처럼 찾아온 것이 바로 ‘서귀포시 귀농귀촌 교육’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지 않으면 마감된다는 풍문을 듣고 남편과 같이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교육신청을 했다.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6월 말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교육이 시작되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80여 명씩 두 반으로 나뉘어 교육을 받았다. 내가 속한 반은 1반. 강의는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진행되었고 몇 개의 강의를 제외하고는 2시간 반에서 3시간 동안 한 주제로 이어졌다. 귀농과 귀촌에 꼭 필요한 강의들만 어떻게 그렇게 쏙쏙 뽑았는지, 강의를 듣는 내내 기획한 서귀포시 마을 활력과 공무원들과 강의에 참여하시는 강사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토지의 매입부터 대출, 얻을 수 있는 혜택, 주의할 점까지 전문가들이 직접 나와 실질적인 교육을 해주었고 제주에서 잘 자라는 작물에 대한 강의는 첫해에 실패한 텃밭 농사의 궁금증도 풀어 주었다. 제주의 특산물 중에 으뜸인 감귤과 만감류에 대한 교육은 특히 흥미로웠다. 귀농 선배의 성공사례와 경험을 담은 강의는 내가 첫해에 조금씩 맛봤던 작은 경험과 성취에 대해 나름의 확신을 주었다. 또 선배 귀농인의 농장을 견학하러 갔을 때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마치 내가 이룬 듯한 뿌듯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이런 정보를 주는 강의들 못지않게 큰 도움이 된 것은 교육생들이 서로 소통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준 것이었다. 쭈뼛거리고 낯을 가리느라 아무에게도 다가가지 못하고 눈치만 보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강의였다. 10명 이내로 조를 지어서 각자의 귀농귀촌 사연을 나누고 필요한 도움과 줄 수 있는 도움을 나누는 자리였다. 그 시간 이후로 나는 혼자 점심을 먹지 않아도 되었고 조원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교육 기간 중에도, 교육을 수료하고도, 우리 조는 저녁 겸 술자리를 같이 했다. 귀농귀촌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고 격려하고 마음을 나누었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기본교육 60시간에서 우리 14기 1반 1조의 동기들을 얻었다면, 심화 교육에서는 또 다른 살가운 만남의 기회들이 있었다. 30시간짜리 POP&캘리 교육을 통해 내 나이 연령대인 동성 친구 두 명을 얻은 것이다. 작품을 하면서 끝없는 수다와 웃음을 나누고 밥을 먹고. 또 내가 여름 끝물에 청귤청을 담느라 힘들 때는 우리 집에 와서 같이 귤도 따고 귤을 썰어주기도 하고. 멀리 있는 자매보다 더 소중한 ‘제주 자매들’를 얻었다.     





‘귀농귀촌 교육’ 덕에 나의 ‘제주 살이’는 완벽해졌다. 멋지고 깨끗한 자연이라는 한쪽 날개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좋은 관계인 다른 한쪽 날개를 달았다. 두 날개를 장착했으니 이제 기분 좋게 날아볼까? 제주야, 고마워. 귀농귀촌 교육, 더더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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