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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cky Ha Jul 24. 2023

그 냄새

꿉꿉한 장마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몸마저 습기를 가득 담은 듯 눅눅하다.

습을 빼고 몸을 좀 말려볼 심산으로 

멀리했던 뜨거운 보이차를 며칠 전부터 

가까이하고 있다.

쌉싸롬하고, 오래된 골방의 향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먼지마저 가라앉아 있는, 오랫동안 사람이 들락거리지 않은 방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책이며 탁자며 개켜놓은 이불이 떠난 이의 체취와 섞여서 내뿜는 

세월의 향기를 나는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어린 시절 엄마, 아빠가 떠나고 굳게 닫힌 건넌방에 숨어들면 나던 냄새.

한낮에도 침침하고 서늘한 그 방에 아무도 몰래 들어가 웅크리고 까무룩 낮잠을 자곤 했다. 

아주 달게.     


지금도 누군가의 집에 방문하여 오랫동안 쓰지 않은 방의 문을 열어볼 때면 마음이 설렌다. 

몸이 본능적으로 그렇게 반응한다. 

주인은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은 데다가 효용을 잃은 잡동사니들이 들어차 있는 방을 보이고 싶지 않겠지만 나는 주인이 눈치채지 않게 몰래 방문을 열어보곤 한다.

코에 와닿는 쾌쾌한 먼지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긴 장마로 나의 베란다 식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겨울을 잘 이기고 봄부터 새잎을 돋우어 본격적으로 성장을 시작했던 게발선인장도 이유 없이 축축 늘어진다. 유독 여름 장마를 타는 제라늄은 말할 필요도 없이 이파리들이 누렇게 뜬다. 과습을 견디기 어려운가 보다. 새로 들인 러시안 세이지는 배실배실 말라가서 줄기를 싹 잘라주었는데 새로 난 잎들도 영 시원찮다. 아무리 식물의 성장에 물이 필수라지만 좋은 것이라도 과한 것은 부족함만 못하다.      


아침부터 보이차며 골방 냄새 얘기를 주절거려도 식물들이나 나나 쨍한 여름 햇빛에 몸을 말리고 싶은 욕망을 숨길 수 없는 긴 장마다. 또 며칠 쨍하고 나면 비를 너무 좋아하는 나는 목마르게 비 오는 날을 기다리는 변덕을 부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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