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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Dec 10. 2022

사교생활이 끝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티븐 킹은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예절을 따지지 않고 식사 자리에서도 책을 읽는다. 작가로 성공하고 싶다면 그런 사소한 예절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정말 진실한 글을 쓰려고 한다면 어차피 여러분의 사교 생활도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니까 말이다’ 


이 문장의 마지막 문구를 재해석해보면 

‘진실로 글을 쓰고 있다면 당신의 사교생활은 끝났다’로 들린다. 


앞서 문장들이 사라지고 그렇게 마지막 문장이 기억에 맴돌았다.  

거기에 나는 글을 쓰면 사교생활이 끝나는 이유에 대한 또 다른 이유 몇 가지를 발견했다. 






1

영감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그래서 매일 쓰는 수밖에. 

그러면 약속을 잡는 것이 어려워진다. 

그때 영감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그런 나날을 보내다 보면 약속을 잡지 않게 된다. 

그렇게 사교생활과 멀어진다. 



2

글을 쓰다 보면 돈이 궁해진다.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그렇게 또 사교생활과 멀어진다. 



3

글을 쓴다는 것은 머리를 탕진하는 것. 

탕진한 머리로 무엇도 할 수 없다. 

당연히 대화도 불가능하다. 

사람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 


그 사실을 모른 채, 누군가를 만난 적이 있다.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상대의 말에 무슨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머리가 아파왔다. 

오해의 말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에 재빨리 헤어졌다.



4

관찰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늘 누군가를 관찰하는 행위를 일상화하는 직업병을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 눈빛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불쾌감이 어떨지 짐작 못할 것이다. 편하게 친구를 만났는데 관상가처럼 보고 있다면 당장 뛰쳐나가고 싶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그런 눈이 내게 있는지 몰랐는데 

글을 쓰는 친구를 만났을 때, 그 눈빛을 마주했다. 

어머나! 저 눈, 저게 저렇게 섬뜩했나? 


자 이제 이렇게 바라보는 이와 얼마나 대화를 할 수 있을까?



5

누군가의 말투와 행동을 통해 추론을 하게 된다. 

추론은 나만의 상상이지만 어떤 단정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 또한 누군가에게 단정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를 감추게 된다. 

은둔생활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게 또 사교생활과 멀어지게 한다. 



6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면 기쁜 나머지 횡설수설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말실수도 하고, 뜻하지 않게 과하게 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사교생활에 또 회의감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온다. 





*

사교생활이 끝장났다는 것.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 다른 의미로 다가올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생활은 이어질 것이다. 

모든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타인을 통해서 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사람을 만날 때가 되면 뇌를 비워둔다. 

그들이 들어설 여지를 마련해주기 위해. 

내가 또 그들에게 들어설 수 있는 노력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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