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보글보글. 요즘 좋아하게 된 단어다. 말랑말랑은 후숙된 복숭아의 표면, 보글보글은 새로 산 키보드의 조약돌 부딪히는 타건 소리. 소리를 좋아하는 걸까 그 감각을 좋아하는 걸까. 적당히 말랑해진 복숭아를 감싸 쥐는 손바닥의 감각과 적고 싶은 글자를 한 글자씩 짚어내는 손가락 마디 끝의 감각. 그냥 다 좋다고 표현할 수밖에는 없겠다.
요즘의 날씨는 너무나 버티기 힘들다. 뜨거웠다가, 어항에 들어가 있는 듯 축축했다가, 하늘이 무너질 듯 소나기가 내리다가 다시 관자놀이 사이에서 작은 물방울들을 끊임없이 내보내니까. 내가 이토록 여름을 싫어했던가? 생각해보면 그럴만한 이유는 다 날씨에 있다. 요즘의 여름 날씨가 싫다. 모든 건 날씨 탓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는 일도. 지하철을 기다리는 플랫폼 안에서 찌는듯한 더위를 견뎌내는 일도. 끝난 사랑을 붙잡으며 슬픈 노래를 듣다가 펑펑 울어버리는 일도. 다 날씨 탓이다. 여름의 날씨가 너무 더워서. 너무 뜨거워서. 너무 눅눅해서. 내 마음까지 물에 불린 종이처럼 힘없이 흐물흐물하게 찢어지는 거겠지. 아무것도 탓하지 않고 날씨를 탓하기로 했다.
까슬까슬한 발바닥, 축축눅눅한 방바닥, 슴슴쾌쾌한 수건, 쭈글쭈글한 마음
말랑말랑한 복숭아, 보글보글한 키보드, 뽀송뽀송한 강아지, 따끈따끈한 토마토 스프, 매끈매끈한 가오리
싫어하는 것 보다 좋아하는 의성어 의태어를 하나 더해서 이 여름을 잘 견뎌내야지
힘없이 늘어진 마음을 깨끗한 가루 세제로 씻어서 습기 없이 잘 말려놔야지
입에 털어 넣는 몇 개의 알약보다, 쭉 짜 먹는 비타민 젤리처럼 말랑하게 잘 지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