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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바꿈 Jun 15. 2024

족쇄 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는 법

잠깐 한눈팔면 수두룩 쌓여있는 카톡, 부재중 전화, 캘린더 일정 알람

난 지금까지의 과학기술 발전이 나에게 편리한 삶을 마련해 준 것에 깊이 감사한다. 한편으로 이제는 느낄 수 없는 아날로그식 기다림과 설렘을 스마트폰과 맞바꾼 것 같은 생각이 들 땐 '더 이상 기술발전이 필요한가' 의문을 던져보기도 한다. 


오늘도 원시시대 손도끼처럼 내 손에 쥐어져 있는 스마트폰은 똑똑한 그 이름처럼 나를 스마트하게 해 줄 거라는 믿음과 달리 제 혼자만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이 물건이 정기적으로 영리해지는 동안 나는 점점 바보가 돼가는 느낌이다.  아주 오래된 친구들의 집 전화번호는 아직도 기억하는데 정작 그 친구의 이동전화번호는 010 다음 1도 생각나지 않는다. 기차에서 버젓이 책 한 권 꺼내 놓고 6.8인치 화면 속에서 결국 빠져나오지 못한 채 목적지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면,  제목만 내비친 책은 쓸데없는 가방 속 짐으로 취급되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다.   내가 쓴 필사와 새벽 산행을 기록하는 SNS는 사진을 올리는 시간보다 다른 사람 릴스에 빠져 있는 시간이 2천5배쯤 많아졌고, 끊임없이 들어오는 부업 계정 차단 노동에 미간 주름이 깊어졌다.


얼마 전까지 나는 직장인이었다.  스마트한 기기가 업무에 큰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  큰 도움이라 함은 적은 인원으로 많을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지 오롯이 내 시간이 많아졌다는 건 아니다. 나에게는  스마트폰이 족쇄 폰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잠깐 한눈팔면 수두룩 쌓여있는 카톡,  부재중 전화,  캘린더 일정 알림이 쏟아진다.  카톡에 명쾌한 답을 주지 않거나, 부재중 전화를 잊고 지나가면 여지없이 스트레스가 뒤통수를 강타했다.  어떻게든 직장에서 버텨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주변의 또래 선후배들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버틸 때 가지 버티는 게 맞다고 했던 까닭에  나 또한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었다. 만약 내가 직장에서 나가야 할 순서가 온다면, 명예롭게 퇴직하는 게 진정한 명퇴가 아닐까 그려보고 또 그려놨다. 어쩌면 직장에서 버텨야 하는 선택의 길에서 내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이 늘 족쇄 폰으로 쥐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던 까닭에 명퇴를 반겼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난 큰돈(연봉)을 지불하고 많은 시간을 구입했다.  족쇄 폰이 스마트폰으로 돌아온 만큼 내 시간을 오롯이 나에게 쓰기 위한 첫 번째 조치로 페이브북과 인스타그램을 중단했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카톡보다 안부전화로 하고, 새벽산행 사진과 필사는 소감과 생각을 곁들여 블로그에 올려둘 계획이다. 스마트폰을 끄고 평일 낯 도서관에서 책에 집중할 수 있는 백수만의 자유이용권도 자주 사용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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