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심은 많은데 참 애매하다. 애매한 인간이 그렇듯 이상은높은데 확신이 없다. 목표는 불확실하면서 넘실대는 유혹에 늘 눈을 돌린다. 마치 글 좀 써 볼까 하고 앉아 인터넷 서핑이나 하고 있고 공부 좀 해볼까 하고 책상 정리 나 하고 있는 꼴이다. 지구력이 부족한 것일까? 시작은 미약하지만 창대한 끝을 보고 싶은데 어찌 된 게 시작은 창대한데 끝이 미약하다. 이렇게 애매할 수가 없다. 늘 시의 적절하게 등장하는 핑곗거리는 애매한 인간에게 아주 큰 동기가 된다. 열패감을 적당히 퉁칠 수 있는 상황들이 내게 놓일 때마다 나는 안도했다.
7년 전 서른 살이 되던 해 미국 이민을 올 때에도 그랬다. 새벽 출근과 늦은 퇴근, 보이지 않는 회사 내 정치 싸움은 날 지치게 만들었다. 동기들도 하나둘씩 이직을 하거나 새로운 진로를 위해 학교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내 일이 싫지는 않았다. 아니 5년 정도 지나니 이제 내 일을 진짜 좋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십 년이 지난 후에도 내가 회사에 남아 있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결심이 필요한 시기였다. 서른을 맞이한 시점은 나에게 새로운 마흔을 꿈꾸게 했으니 결단은 비교적 쉬웠고 아쉬움은 애써 외면했다. 근본 없는 자신감이 막 솟구치고 있었다. 남들은 못 가서 난리라는데 기회가 있을 때 떠나야지. 그깟 내 커리어쯤 새로 시작하면 될 것이었다. 어쩌면 더 넓은 세상에서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리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전업으로 지낸 지 7년 '그깟'이라 여겼던 내 커리어가 나는 아주 많이 그립다.
사실 전업으로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하며 이민생활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면 나는 아마 많은 이민자들의 공분을 살지도 모른다. 많은 이민가정이 육아와 비자 등의 신분이 해결되면 맞벌이의 형태를 띠고 있다. 맞벌이는 사실 미국 내 가정 경제 모습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여성의 자아 성찰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떠나 맞벌이가 당연한 사회적 분위기이다. 아마 이런 현상은 내가 떠나온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019년 6월 26일 자 빅터 뉴스는 대한민국 맞벌이 가구 현황을 보도했다. 통계청이 내놓은 2018년 하반기 맞벌이 가구 및 1인 가구 고용 현황’에 따르면 2018년 10월 기준 유배우 가구 1224만 5천 가구 중 맞벌이 가구는 567만 5천 가구로 46.3%에 달했다. 이 수치는 전년 대비 1.7% p 상승한 것이다.
내가 느끼는 맞벌이 체감 수치는 훨씬 높다. 아마도 나의 지인 대부분이 맞벌이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 내가 살고 있는 미국도 맞벌이를 하는 이들은 날로 늘어가고 있으니 유배우 가구 맞벌이 수치 상승은 전 세계적 흐름임이 틀림없다.
이미지 출처 ㅡgetty images
워킹맘의 전쟁과 같은 일상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고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길이니 부연설명은 필요 없다. 그저 나하나만 건사하면 되었을 시절에도 아침 출근은 북새통이었고 집안 꼴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 아이와 남편까지 있는 상황이야 오죽하겠는가. 그저 하루하루 오늘도 해 냈다는 심정으로 채워가고 있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 있는 나의 그녀들, 워킹맘들에게 지켜내라 말하고 싶다.버텨내라 하고 싶다. 이런 글을 쓰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돌덩이가 날아올 것 같다.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앉아있다는 비난이 귓가를 스친다.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고 함부로 말한다고 할 것 같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다. 나처럼 '욕심 많은 년'은 내려놓기가 쉽지가 않으니. 사실 엄청나게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도 아니면서 이상만 높아 정신적 피곤 지수가 상당하다. 이 '욕심 많은 년'은 이민이란 선택을 누가 등 떠밀며 한 것도 아니고 현재에 감사하면서도놓고 온 커리어는 그립다.
이율배반적인 감정이다. 스터디를 준비해 함께 꿈을 이룬 동기들이나 혹은 같은 직종에 가진 선후배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반가우면서도 한편 우울해진다. 그들의 노력이 대단하면서도 '그들도 해냈는데 나도 할 수 있었겠지'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헛된 후회를 한다. 내가 좋아 내가 선택한 이민행이니 누구 하나 원망할 사람도 없다. 정말 최선을 다해 낯선 이곳에서도움 없이 살림을 하고 육아를 해 낸 나의 시간들을 하향 평가해버리고픈 마음까지 든다. 전업역시 호기롭게 선택한 것임에도 말이다. 가끔 이 대책 없는 감정의 근원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라 당황스럽다. 나는 왜 이제야 버리고 온 내 커리어가 아까운 것일까. 그리고 이젠 한국의 나의 워킹맘들에게 강조까지 한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문 열고 나오는 순간 멘탈 털리는 건 더 해"
이제 두 돌이 지난 아이를 돌보아 주는 이모님이 바뀌어 마음이 아프다는 친구 S에게 난 너무도 냉정하게 말해 버리고 말았다.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고 절대 퇴사는 생각지도 말라고 당부했다. 아이들은 금방 큰다. 물리적인 시간보다 절대적인 사랑을 주면 아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잘 자라니 걱정하지 말라며 말이다. 친구라고 있는 것이 미국에서 해준다는 조언이 이 딴 식이니 S는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겪어보니 그렇더라는 이 냉정한 사실을 난 꼭 알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