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도 길이다
때로는 눈앞에 분명하고 하나 뿐인 길을 가고 싶지만, 막상 그런 길을 만나도 성에 차지는 않을 사람이라 출구가 안 보이는 미로 같은 길 한복판에 있는 것도 괜찮다고..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것이 종종 뭐가 맞고, 틀린지를 점검하고 의심하게 만들지만, 대체로 살아온 날의 경험을 돌아보면 이미 내 안의 답은 나와있지 않을까?
회사 돌아가는 상황이 이러저러해서 떠나야 할지 남아야 할지 고민이야, 라고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희망퇴직자 조사기간 동안 결정을 해야 하는데 남으면 이게 걱정, 떠나면 저게 걱정이라고.
<자기 고민을 해. 상황을 고민하지 말고.>
예상 밖의 피드백이었다.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얼얼했고, 귀신 머리카락처럼 엉켜있던 고민의 실타래가 스르륵 풀리는 듯했다.
그러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니까 상황 논리에 빠져서 갈팡질팡 하고 있구나. 스스로를 객체로 여기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선택을 이런 식으로 했었을까.
집단주의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것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맥락적 사고가 온몸에 퍼져있는지는 몰랐다. 익숙하지 않은 사고방식이지만 나와 상황을 분리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문제는 단순했다. 퇴사를 하면 이후에 무엇을 할지 계획이 없었고, 머무르게 되면 당분간은 현재를 유지할 수 있다.
<그냥 쉬고 싶은 거 아닐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하면 되는데 계획은 없고, 쉬면서 계획을 세우고 싶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냥 쉬고 싶을 수도 있다고. 마침 명분이 생긴 거고.
이번에는 다르겠지, 이런 순진한 생각을 하기에는 유사 경험이 많이 쌓였고, 굳이 테스트를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결과가 예측되었다. 지금보다 시간이 많고 자유로웠을 때란 이미 충분히 많았으니까. 그중에는 필요한 쉼도, 회피하는 쉼도 있었다.
<마흔이면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인데 진짜 그래요?>
나보다 앞서 마흔이 되는 친구에게 불혹의 의미를 체감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너무 멀리 와서 그래요. 돌리기 힘들어서 유혹에 넘어갈 수 없어요.>
‘불혹’의 현실 정의가 크게 와닿았다. 유혹에 넘어가면 잃을 게 많다는 뜻이었다니. 그래서인가? 마흔에 가까워진 나는 이전과 달리 떠나지 않고 머무르는 선택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