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두달동안 엎드려 생활했다.
벌써 20년도 더 넘은 일이다. 최근에 장애인유투버가 욕창으로 엎드려 생활한 영상을 보니 20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허리와 어깨 수술 후 의사는 욕창매트리스 사용을 권유했다. 움직일 수 없으니 욕창매트리스 사용으로 욕창을 예방하라는 것이었다. 가족은 인근 의료기상사에서 매트리스를 구입해 베드에 깔아주었다. 욕창매트리스는 공기가 순환을 하면서 압력을 받는 부위를 분산시키는 원리로 작동된다. 당연하게도 전기제품이다. 스위치를 켜면 모터가 돌아가고 공기가 순환을 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20년 전 사용한 매트리스는 매우 시끄러웠다. 모터소리, 공기가 움직이는 소리가 다 들렸다. 그래서 모두가 잠들면 매트리쓰 전원을 끄곤 했다. 매우 어리석은 짓이었고 난 엉덩이에 욕창을 얻었다.
잘 먹어야 살이 차 오른다고 했는데 음식은 쉬이 넘어가지 않았고 욕창은 점점 심해졌다.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의사는 성형수술을 결정했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수성형이라는 세부분과가 있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엄청난 출혈로 수혈도 며칠 받았다. 수술 후 회복기간에도 출혈이 계속되었고 기저귀는 피로 가득했다. 이때 나를 간병하며 피를 너무 많이 본 동생은 지금도 피를 보면 힘들어한다.
썩은 피부를 도려내고 근처 살들을 잡아당겨와서 메운 수술이었는데 수술부위에 압력이 가해지면 안되니까 두달 동안 엎드려서 생활했다. 엎드려서 먹고 자고 하는데 정말 고통스러웠다. 누워만 있을 때는 천장이 그렇게 보기 싫었는데 엎드려서 생활하니 천장이 그립더라. 수혈팩에 온갖 약들을 주렁주렁 달고 수술부위의 출혈을 뽑아내는 관과 소변줄을 끼고 생활한 두달은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살았나 싶다. 지금은 나는 성형미인이다, 라는 드립을 치면서 웃을 수 있는 과거지만 그때의 나는 참 장하네, 장해.
병원에 있는 김에 아주 뜯어 고치고 나간다,
고 깔깔대면서 성형수술 소식을 친구들에게 알리는 것은 즐거웠다.
성형수술 결정이 나자 성형외과 의사가 회진을 왔다. 욕창 부위를 보면서 인턴과 이것저것 이야기(지들끼리)를 나눴다. 전문의가 나가고 인턴이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요렇게 요렇게 수술할 거라고 설명해 줬다. 머리가 무지하게 큰 인턴이었다. 그래봤자 직접 보지도 못한 나는 설명을 이해도 못 했다. 물리치료사들에게 수술 소식을 알렸다. 운동치료사는 이제 겨우 운동할 만한데 관둔다고 아쉬워했다. 그러게 욕창은 왜 만들었느냐며 타박까지 하셨다. 그렇게 대망의 성형수술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7월 17일 성형외과로 전과했다. 이것저것 짐들을 챙기는데 은근히 가져갈 것이 많았다. 두달 반 정도 살았다고 흔적 투성이였다. 신경외과는 신관이라 성형외과 병동(이라봤자 일반외과 병동에 얹혀있는 모양새)과는 아예 건물이 달랐다. 건물도 깨끗하고 병실도 컸던 신관에 비해 성형외과는 구관이어서 건물도 후지고 그닥 깨끗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대학병원이라 지저분하진 않았지만 전반적인 느낌이 그닥 깔끔하지 않다). 내 병실은 7인실이라 그나마 병실이 큰 편이었다. 6인실은 정말 코딱지만했다. 병실을 옮기니 동생이 가장 좋아했다. 이유는 보호자 침대 때문이었다. 신관 보호자 침대는 조금 짧은 편이어서 163-4 정도 되는 동생의 키에도 다리가 나왔다. 그래서 늘 보조 의자를 훔쳐와서(?) 잠을 잤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렇게 안 자도 된다면서 좋아했다.
오전에 그렇게 부산하게 병실을 옮기고 나니 점심부턴 금식이었다. 뭐, 수술 전날이니까. 저녁에 인턴이 와서 수술 후의 일을 대략 설명해 줬다. 엉덩이를 수술하기 때문에 수술 후 꽤 오랜 시간 동안 엎드려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얼마나요? 한 3주 정도? 3주요? 더 길어질 수도 있고 어쨌든 그 이하는 아닐 거야, 말도 안돼. 엎드려서 먹는 건 아니죠? 아니 밥도 엎드려서 먹고 잠도 엎드려서 자고 그냥 있을 때도 엎드려 있는 거지. 한숨이 나왔다.
다음날 오후, 수술에 들어갔다. 민망한 수술복을 입고 차가운 공기의 수술 대기실에서 주사를 한대 맞았다. 알러지 반응을 보는 주사라고 했다. 수술실 들어오기 전에는 하나도 안 무서웠는데 대기실에서 주사 맞고 기다리고 있으려니 무서워졌다. 엎드려서 수술받는 거겠지? 수술 끝나면 기저귀는 누가 채우지? 근심스런 가족들 얼굴도 선명해지고 기도해 주시던 여사님도 생각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생각이 길어질수록 공포는 더해졌다.
수술대에 옮겨지고 간호사가 기저귀를 풀었다. 커다란 구멍이 있는 초록색 천을 엉덩이에 덮었다. 다행이다, 그래도 뭘로 덮고 수술하는구나. 마취과가 좀 늦게 와서 수술실에 적막이 흘렀다. 마취할게요 100부터 1까지 거꾸로 세어요 어쩌구저쩌구…… 마취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난 잠들었다. 4시간이 조금 넘는 수술이었다고 한다. 3시간 정도로 잡고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수술이 길어졌다고 했다.
수술 후 회복실에 있다가 병실로 돌아왔다.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여사님도 퇴근하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다. 눈이 계속 감기는데 가족들이 계속 깨웠다. 자면 안 된다고 했다. 시야도 흐릿하고 비몽사몽이었다.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 것이 몸이 흐물거리는 듯했다. 눈은 계속 감겼고 가족들은 계속 깨웠다. 흐물흐물. 동생이 우스개소리까지 해대며 나를 깨우고 있었다. 너무 졸려, 안 졸려, 졸려, 안 졸려, 졸려, 안 졸려, 미칠 것 같았다. 왜 못 자게 하느냐고 따지기까지 했다. 간호사가 와서 뭐라뭐라 설명했지만 여전히 졸렸다.
한참을 그러다가 정신이 빠릿빠릿해지면서 죽을 것만큼 아프기 시작했다.
-2005년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