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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호 Jul 04. 2021

꽃도 ‘바보 꽃’이 있다?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 ‘여는 글’ 이야기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에는 39개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그 글들 가운데 작가인 제가 쓰면서 제일 힘들었던 글이 뭘까요? 그건 단연코 ‘여는 글’입니다. 책에서 목차보다도 먼저 나오는 ‘여는 글’은 독자들이 가장 먼저 읽는 글이니 책의 첫인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죠. 제목에 끌려서 책을 집어 들었다가도 여는 글이 별로면 이내 책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만큼 중요한 글인데요. 작가들 입장에서는 ‘여는 글’이 ‘닫는 글’인 경우가 많습니다. 원고를 쓸 때 ‘여는 글’을 먼저 쓰고 집필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집필이 다 끝난 뒤에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책을 소개하는 마음을 담아 ‘여는 글’을 쓰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여는 글’을 보면 출간을 앞두고 “누구누구한테 감사하다”는 말이 등장하는 걸 많이 보게 됩니다. 


 지난겨울 원고를 모두 써서 출판사에 넘긴 뒤 출간을 기다리던 저는 마음 한 구석에 묵직한 돌덩어리 하나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바로 멋진 ‘여는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었죠. 어떻게 하면 짧은 글 하나로 독자들에게 이 책의 매력을 잘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도무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봄이 오고, 정해진 출간일이 다가오자 마음은 더 조급해졌습니다. ‘차라리 여는 글 없이 바로 본문으로 시작할까?’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다 창밖을 보니 파릇파릇하게 올라온 새싹들 사이로 몽우리가 진 채 개화를 기다리는 꽃들이 보였습니다. 그때 문득 꽃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대학시절 우리 단과대학 앞에 있던 목련이었죠. 

 목련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꽃입니다. 일단 봄의 포문을 열 듯 다른 꽃들에 앞서 이른 봄에 피는 개화 시기가 인상적이죠. 그 자체만으로도 온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으니까요. 또, 만개했을 때 다른 봄꽃들을 압도하는 크고 화려한 자태와, 반대로 꽃이 졌을 때는 처절할 정도로 처량한, 짧은 시간 안에 극적으로 달라지는 모습이 우리 인생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이 목련은 좀 더 특별했습니다. 이 목련은 건물의 스팀 구멍 바로 앞에 있었는데, 이 때문인지 매년 봄에 혼자 일찍 꽃을 피웠다 일찍 지곤 했습니다. 이 목련을 학생들은 ‘바보 목련’이라 불렀습니다. 저는 편법까지 써가며 혼자 앞서가는 목련이 ‘천재’가 아닌 ‘바보’로 불린다는 것이 이 책의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려고 보니, 이 목련이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지, 그리고 여전히 똑같은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지 궁금하더군요. 저는 이미 졸업한 지 20년이 다 돼가니까요. 그래서 저희 학과 교수님께 여쭤봤습니다. 교수님의 대답은 놀라웠습니다.

 “지금도 ‘바보 목련’이라고 불리는 건 물론이고요. 심지어 ‘미친 목련’이라는 새로운 별명까지 얻었어요”

 결국 이 바보 목련에 얽힌 이야기로 책의 여는 글을 열었고, 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래서 목적지에 좀 늦게 도착하지만 그만큼 더 가치 있는 것들을 배우고 더 많은 배려심과 공감능력을 기르는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출간 후 독자님들이 올려주신 리뷰들 중에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글도 발견했는데요. 그분이 졸업한 대학교에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매년 다른 꽃들보다 일찍 피는 철쭉이 있었는데, 이 철쭉 역시 별명이 ‘바보 철쭉’이었다는 겁니다. 정말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한가 봅니다. (전국에 있는 또 다른 바보 꽃들에 대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여는 글’이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책을] 여는 글’이라는 뜻이 우선 떠오르지만, 그것의 위치나 성격을 볼 때 ‘[작가의 생각을] 여는 글’ 혹은 ‘[독자의 마음을] 여는 글’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쪼록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의 여는 글이 뭐든 한 번에 되지 않아서 늘 고민이었던 저와 독자님들의 마음을 잘 이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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