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출간후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호 Jul 09. 2021

세상에서 가장 오래 쓴 독후감

 책을 출간한 후 한동안 독자들의 독서후기를 찾아 읽는 게 일상이었다. 독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개인 블로그나 SNS에 올리는 독서후기를 저자가 직접 찾아서 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저자가 굳이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내 블로그까지 찾아오겠어?’, ‘바쁜 저자가 내 후기까지 읽을 시간이 있겠어?’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경우를 놓고 보면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책을 낸 저자 입장에서 독자들의 반응보다 더 궁금한 건 없다. 당연히 틈날 때마다 독서후기부터 찾아보게 된다. 그런데 이게 저자 입장에서 좋아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포털들의 검색 기능이 너무 좋다. 조금만 신경 써서 찾아보면 곳곳에 숨어있던 독서후기들이 줄줄이 검색돼 올라온다.


 그 많은 후기들 중에서 유독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후기가 있었다. 책을 내고 한 달쯤 뒤였다. 그날도 잠시 틈이 나서 독서후기들을 검색해서 읽고 있는데 책을 읽게 된 계기가 좀 특이한 사람이 있었다. 40대 직장인 남성인 그는 최근 회사에서의 일들로 인해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퇴근을 하고 집에 오니 부인이 그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골랐다며 책 한 권을 건네주더라는 것이다. 부인이 남편의 고민을 깊이 생각하며 거기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찾아 선물했다는 게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게 내 책이라니!)

 더 인상적인 건 그 뒤의 얘기였다. 책의 제목과 목차를 본 남편은 내용이 너무나 자기 얘기 같아서 단지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독서와 함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글을 쓰기로 했다며 후기를 올렸다. 그런데 특이한 건 다음날 또 새로운 후기가 올라왔다는 것이다. 책의 첫 번째 글에 대한 후기였다. 그다음에는 두 번째 글에 대한 후기, 또, 그다음에는 세 번째 글에 대한 후기가 올라왔다. 궁금증이 들었다. ‘본문 글이 38개인데, 이런 식이면 책 한 권을 읽고 독서후기를 38개를 쓰겠다는 건가?’  

 독서후기를 쓰는 건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책을 읽을 때는 독서가 주는 즐거움으로 인해 끝까지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만, 책 읽기가 끝난 뒤에 다시 그걸 되돌려 보며 나의 생각을 담아 글을 쓰는 건 적잖은 신경을 써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그런 귀찮은 일을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책 한 권을 읽으며 38번이나 한다는 건 대단한 의지가 있지 않고선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몇 번 쓰다 그만 둘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독자가 참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열흘이 지나도, 20일이 지나도 그의 독서 후기 쓰기는 계속됐다. 중간에 일이 바쁜지 쉬는 날은 있어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며칠 있다가 ‘설마 아직도?’ 하며 블로그를 들어가 보면 또 후기가 올라와 있고, 또 며칠 있다가 들어가 보면 책의 목차대로 쓴 새로운 후기 몇 개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이 많지 않은 듯 조회수가 높지 않은데도 그는 묵묵히 후기를 써 올리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후기 속에 담긴 그의 진솔한 고민과 생각들도 인상적이었다. 책을 쓴 나조차 생각하지 못한 깊은 이야기까지 그의 후기에 담겨 있었다. 후기를 읽을 때마다 ‘잘 읽고 있다’고 댓글을 달까도 생각해 봤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여전히 후기를 쓰고 있는 그에게 저의 댓글이 부담이 될 것 같았다. 책 속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을 수 있고, 지적하고 싶은 것도 있을 수 있는데, 저자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솔직하게 쓰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그렇게 두 달 가까이 그의 후기 쓰기와 나의 읽기가 나란히 계속됐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마지막 후기를 올렸다. 책에 실린 글의 개수와 똑같은 38번째 후기였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 쓴 독후감이 아닐까? 마지막 후기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나중에 이야기를 전달할 기회가 생긴다면 꼭 이야기 나누고 싶은 작가이다.”


  마지막 후기를 읽은 나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댓글을 달았다. 처음부터 후기를 다 읽고 있었고, 이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괜찮다면 한 번 만나서 식사를 함께하고 싶다고.


 그리고 2주쯤 지난 어느 금요일 저녁, 각자의 직장에서 일을 마친 우리는 두 회사의 중간쯤에 있는 서울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저도 당신의 독자였습니다. 독자로서 당신의 글을 읽으며 행복했습니다.”


 우리는 분명 서로가 서로의 독자였다. 그가 내 책을 보며 위로를 받았듯, 나 역시 그의 글을 읽으며 힘을 얻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처음 만난 우리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서로의 삶과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며 유쾌하고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헤어질 때쯤 그가 내게 편지 하나를 보여주었다. 그가 독서를 마친 뒤 책을 선물해준 아내에게 준 편지였다. 편지에서 그는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고, 다시 도전할 힘을 키우기로 했다며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책을 선물한 아내도, 그 책을 읽고 38개의 후기를 쓴 남편도 참 아름답다

 그로부터 다시 1주일이 지난 오늘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날 이후 용기를 내 브런치 작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했다. 그의 ‘독자’라고 했던 내 말이 그에게 좋은 자극을 주었다며, 이제 무언가의 후기가 아닌, 작가로서 온전히 자신의 생각과 고민을 담은 글을 세상에 내놓으려 한다고 했다.

 글을 쓰고 책을 내며 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감사한 건 글을 통해 새로 맺게 되는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이다. 글이 맺어준 그와의 놀라운 인연에 감사하다. 작가로서 새로운 발을 내디딘 그가 끈기 있는 후기로서 내게 감동을 주었듯 이제 그만의 이야기로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기를 바란다. 그의 진솔한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나왔을 때, 그때는 내가 독자로서 그의 책을 읽고 정성을 다해 독서후기를 남기리라.


[작가와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kkh_mbc@인스타그램’에서 편하게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www.instagram.com/kkh_mbc


매거진의 이전글 꽃도 ‘바보 꽃’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