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만 재미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2023년 4월 3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나는 이석훈 씨의 중증 팬이었다. 놀랍게도 라라라 뮤직비디오가 나의 입덕영상이다(…) 그가 데뷔를 2008년에 했으니 벌써 15년 전 이야기다. 티비에서 처음 본 순간 그는 나의 천년의 이상형으로 자리매김해버렸다.
그 당시 나의 행적이 요즘 세대의 ‘덕질’의 범주에 들어가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난 정말 열렬히 이석훈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 행동은 또래 사이에서 꽤나 눈에 튀었는데, 내 친구들은 빅뱅과 샤이니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발라드 가수(그것도 당시로서도 이미 정상을 찍고 내려온(?) SG워너비)를 좋아하는 나는 놀림감이었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2009년 마침내 SG워너비 전국투어콘서트에 가기로 한다.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고(…) 티켓팅은 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엄마가 해주셨다. 아마 플로어 11번째 줄이었던가? 사실 이제 와서 얘기지만 정말 많이 예습하고 갔고, CD를 삼킨 수준의(예전 가수들은 이런 표현을 정말 많이 썼다) 라이브 실력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눈물 나는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 순간 이석훈 씨를 다시 찾아보니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어라? 이거 아닌데? 이석훈을 좋아했던 어린 나는 놀림감이었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그가 잘생겼다고? 물론 내 눈에는 세상존잘 원앤온리 미남이었으나.. 당신들 눈엔 아니었지 않은가?
놀면뭐하니를 통해 더욱 인기를 얻은 그는 세월의 선택을 받아 최정상 아이돌이 되어있었다. 이석훈에 빠졌는데 유부남이어서 안타깝다니.. 난 그가 지금의 아내분과 나온 추석특집 소개팅 프로그램도 실시간으로 봤다. 사랑의 작대기(?) 매칭이 되는 그를 보며 속으로 ‘ㅎㅎ 이건 다 대본이야 ㅎㅎ 그러니 괜찮아’라고 생각했던 내가 선명한데.. 세상이 나를 두고 이석훈으로 장난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SG워너비 완전체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갈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14년 전에 SG워너비 콘서트에 10만 원을 주고 갈만한 여중생이 내 주변에 없었듯, 이번에도 15만 원을 주고 SG워너비 단독콘서트에 갈만한 20대 여성은 없었다. 결국 두 번 다 혼자 갔다는 소리다.
객석에 앉아있는데 별 생각이 들었다. 14년 동안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석사과정을 공부해보기도 했고, 취직해서 근로소득을 얻어보기도 했고, 창업해서 사업소득을 얻고 있기도 하다. 생각해 보니 한 순간도 쉬웠던 1년이 없었다. 언제나 치열했고 고민했고 결정했던 순간들이었고 그럼에도 내가 여기 다시 와있다는 게 신기했다.
콘서트가 시작되었고 너무나 당연히 다 아는 노래였고(…) 그들의 오래된 농담에 웃을 수 있었다(예컨대 가장 최악의 머리스타일이 6집이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난 폭소했다 왜냐면 정말 최악이기 때문이다) 14년 전처럼 멘트를 할 때 김용준은 어이없이 웃겼고 김진호는 진중하고 진솔했으며 이석훈은 그 중간이었다.
콘서트 내내 나의 눈은 정말 바빴다. 이렇게 말하면 세명을 번갈아 눈에 담느라 바빴나 싶겠지만.. 사실은 전광판에 크게 나오는 이석훈 얼굴과 실물의 이석훈 전신을 번갈아 보느라 거의 동공지진 수준으로 바빴다. 난 분명히 이제 이석훈에 크게 관심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14년 전 습관인 거로 치기로 했다.
난 이석훈이 노래할 때 ‘까랑까랑’한 목소리를 정말 좋아하는데, 사실 그의 솔로앨범에서는 그런 목소리를 많이 듣지 못했다. 그의 솔로곡은 너무 달달하거나 너무 애절하다.. 물론 싫다는 건 아니다. 그래도 난 이석훈의 패기 있는 목소리를 좋아하는데 역시 예전 곡들을 부르니 그런 목소리가 많이 담기는 것 같았다. (모두 내 착각일 수 있다)
워너비 3인의 각자 개인무대도 하려나 싶었는데 이번엔 없었더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석훈 무대는 언제나 14년 전 콘서트 개인무대로 부른 김동률 the concert라서 아쉽지만 그 나름 또 세 명이 함께하는 시간으로 가득 채워져 좋았다.
글이 생각보다 더 길어지고 있다.. 이제 마무리해야겠다. 그래서 결론은? 좋았고요.. 콘서트 또 하세요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