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기억 속에서 엄마는 15
엄마가 방광염 증세로 입원하셨다. 보통은 항생제 먹으면서 치료하는데, 연로하신 분이라 어찌 될지 모르니 입원을 하시라는 거였다. 일반 병실이 없으니 보호자 없이 시범 운영되는 병실에 입원하셔야 한다고 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 병원 인력이 돌봐드리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괜찮겠지 뭐.
입원 절차를 마치고, 엄마를 그냥 두고 나오려니 마음이 편치 않아 사정사정 해가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겠다고 했다. 저녁 드실 때까지... 주무실 때까지.... 내가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본 데는 이유가 있었다.
건너편에 거동이 불편한 아주머니가 계셨다. 잘 드시고, 한참 전화도 하시고. 보행이 불편한 정도이지 다른 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 분이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무도 와서 부축해가지 않았다. 기저귀를 채워드렸으니 그냥 보시면 된다는 거였다. 어? 어? 하는 사이에 아주머니는 급하신지 그냥 앉아서 힘을 주신다. 아, 그 민망함이라니. 보호자처럼 챙겨주지 않는구나!
기저귀 수시로 살펴주냐고 물었더니 일정한 시간에 돌아본다는 거였다. 그렇게 안 하면 일손이 모자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자기들도 바쁜데 어떡하냐는 무슨 배째라 식의 태도였다. 나와 이야기 나눈 간호조무사가 성격이 좀 무뚝뚝한 분이었던것 같기도 하다.
이게 보호자 없는 병동의 시범 운영이구나! 신문 같은데 보면 환자도 보호자도 만족한다고 하는데, 욕창 환자도 줄고 아주 바람직한 시스템이라는 기사도 봤는데.... 그날 내가 겪은 바로는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물론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환자라면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중증 치매 환자나 와병 환자도 그런 시스템이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환자들의 상황이 다 그렇게 일률적으로 구분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인지력이 완전하지 않고, 거동도 불편한 엄마가 낯선 병원에서 불안할텐데 어쩌나 걱정하다가 소변, 대변 다 보시고 주무실 시간도 지난 것 같아 머뭇거리던 중, 이제 가시라는 간호사 말에 잘 부탁드린다고 꾸벅꾸벅 굽신굽신하고는 집에 왔다.
새벽에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그때만 해도 전화를 하실 수 있었네!) 좀 추우니까 스웨터 가져 오라고. 동생한테도 전화하셨던 모양이다. 추워서도 아니고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불안하셨던 거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병실을 옮겼다. 1인실이든 특실이든 옮겨야 했다. 자식들이 옆에 있을 수 있는 곳으로.
1인실로 옮긴 엄마는 감격스러운 얼굴이었다.
"어휴, 이런 거처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까지 하신다.
엄마가 그 전에 입원하셨을 때도 코로나 시절이고 해서 1인실 입원하셨었는데 왜 이렇게 새삼 감격하시지?
엄마가 벽에 붙은 그림을 가리키셨다.
"저게 뭐니?"
낙상 주의하라는 문구들이 써 있고, 휠체어가 굴러 다치는 그림이었다. 글씨가 잘 안보였나보다.
"훨체어로 이동하거나 침대에서 내려올 때 조심하라는 안내문이야. 낙상주의!"
엄마가 그제서야 안심이 된다는 얼굴로 말씀하셨다.
"난 저 사람들이 나를 굴려서 아래쪽으로 보내 죽이려고 하나, 생각했어."
아, 엄마는 보호자 없는 병실에서, 낯선 병실에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는다는 생각 이전에, 누군가 나를 해칠 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 밤을 보내신 것이다.
보호자 없는 그곳에서.
그러면서도 자식들한테는 그런 말씀을 안 하셨다. 혹 안 올까봐 불안하셔서 스웨터를 가져오라고 하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