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이라는 세월 동안 동고동락해오던 집사람과 결국 이혼을 했다. 충분히 안정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숨은 가빠오고 손은 차가웠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기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한 숨만 깊게 뱉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다고 깊은 한 숨을 수없이 반복하여도 가슴이 뚫리긴커녕 조여올 뿐이었다. 정신과라도 방문해 볼까? 명상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 퇴근 후 나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친구가 되어주고, 두 눈을 통해 마음 깊숙이 속삭이는 책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책 한 권으로 나는 깨달았다. 나는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사서 걱정하는 불안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아직도 나는 지금 과거에 머물러 후회만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금방이라도 숨 막혀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가 닥친다는 것을..
그것이 공황장애라는 것을..
두 딸아이의 아빠다. 지 엄마를 닮아 너무 예쁜 외모를 가진 딸 둘이다. 마음 같아선 그동안 카메라로 찍고 모은 사진들을 글과 함께 브런치에 올리고 싶지만, 앞으로 이어나갈 이야기가 그리 행복한 이야기가 아니기에 차마 올릴 수 없을 것 같다.
8년 그 여자를 동네에서 처음 본 순간이 아직도 떠오른다. 하얀 피부, 자그마한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 청순한 이미지. 스물여덟 나는 첫눈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린 연애를 하게 되었고, 열렬히 사랑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사귄 지 두 달이 지났을 무렵 그 여자의 단점을 알게 되었다. 기분상태가 수시로 하늘과 땅 차이로 변하는 것이었다. 연인 사이에 오가는 평범한 말과 행동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심하면 박차고 일어나 나에게서 도망치듯 장소를 떠났다. 나를 수신차단 했다가 몇 시간 뒤면 다시 내 전화를 받고 기분이 풀린 듯 우린 일반적인 연인들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연애시절엔 나의 말과 행동이 잘못된 줄 알았다. 마치 토라져버린 아이를 달래듯 그 여자를 어르고 달랠 수밖에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달래는 것이 버릇이 된 나머지 영문도 모른 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정신 차리고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무렵 우리에겐 아이가 생겼다. 그 후에도 많은 고민과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우린 속도위반이라는 명목 하에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브런치를 통해 그동안 경계인(경계선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용어) 곁에 살면서 일어났던 상황과 아픔에 대해 토해내려 한다. 경계선 성격장애를 다루는 책에 의하면 BPD는 주로 여성에게 나타나며 인구 대비 2%의 사람들이 BPD라고 한다. 100명 중 1명 혹은 2명이 경계인이라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들로 인해 상처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은 적어도 10명 이상일 것이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경계인과 비 경계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은 그들을 폄하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단순히 아픔을 나누고 싶어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경계인이라면 당신 곁에 있는 누군가가 그때 그 순간의 아픔과 상처를 조금이나마 헤아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반대인 경우라면, 경계인들이 순간적으로 당신에게 쏟아내었던 말과 행동들은 절대 당신과 경계인의 잘못이 아닌 BPD의 못된 장난이라 생각하길 바라며 경계인들을 이해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내는 이제 나와 남이지만, 언제까지나 우리 사랑하는 두 딸의 엄마이자 내가 정말 사랑했던 여자로 기억되길 바라며 좋은 의사를 만나 완쾌 후 행복한 새 삶을 살아가길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한다.
참고로 앞으로 이어나갈 이야기들은 직접 찍은 사진 아래 혼자 속앓이 하며 써왔던 일기장, 경험과 생각, BPD관련 서적들에 소개된 내용을 기반으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