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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몰포스 May 19. 2020

마흔여섯, 왜 프랑스어 공부 하나요?

"너에게 공부하라 하느니 내가 하고 만다. 까짓 거. "

      

                                                                                                                                            임씨부인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프랑스어 공부였다.

때마침, 동네 북 카페에서는 프랑스어 왕초보 수강생을 모집 중이었다. 한 달에 칠 만원을 내면 일주일에 하루, 두 시간 수업에 커피 제공이었다. 집 가까운 카페에서 커피까지 마시며 공부 할 수 있다니 기회다 싶었다. 프랑스어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인도어를 가르친다고 해도 시작했을 것이다. 좋아하는 작가, 빅톨 위고나 알베르 까뮈가, 와인과 치즈, 크로와상의 나라가 프랑스라는 뻔한 상식도 인연의 끈처럼 의미심장해졌다.


평생을 써 온 한글이나 영어에서는 쓰지 않던 구강구조를 자극해 새로운 발음을 구사한다는 점도 도전의식을 자극했다. 발음과 소리 속에서 펼쳐지는 모험이 흥미로웠다. 프랑스어에 재능까지 있다는 건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심지어 나의 저음이 프랑스인들이 선호하는 톤이라니, 외국어 공부라기보다 내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학생증까지 발견한 건 한달 쯤 후였다.

16년 전, 큰아들이 막 태어났을 때 방송통신대학교에 편입을 했던 당시에 학생증이었다. 하얀 색 스웨터를 입고 긴 머리를 하고 갓 서른 살이 된 내가 사진 안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공은 불어불문과였다. 맞아, 내가 그 때 그랬었지! 한 때 프랑스어에 도전을 했단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책장을 살피니 ‘프랑스어 초보’라는 책도 꽂혀 있었다. 당시, 남편이 나를 위해 퇴근길에 서점에서 사다 준 책이었다.


세 아이 낳고 키우는 동안 내 도전의 역사도 기억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어와의 인연이 더욱 각별해졌고, 공부는 즐거웠고 실력도 일취월장이었다. 사십대 후반에 그 어렵다는 프랑스어를 배워서 뭐하려고 그러느냐는 지인들의 물음처럼 학위를 딸 것도, 번역가가 될 것도 아니지만 도전하는 것, 외국어를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자 의미라는 설명에 보태어 나는 결국 그 날의 이야기를 하게 됐다.     


“코끼리가 영어로 뭐지?”

그 날, 초등학교 5학년 막내딸은 오빤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느냐는 듯이 큰아들을 잠깐 쳐다보다가 엘러펀트잖아! 라고 소리쳤다. 큰아들은 아아...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짧은 순간에 만천하에 들통 나고 만 자신의 영어 수준 따위는 아랑곳 않았다. 동생들 잘 챙기고, 집안일 잘 하고, 엄마, 아버지 안색까지 살피고 할머니나 친척들에게 시키지 않아도 안부 인사 돌리고, 그림까지 잘 그리는 맏이였다. 친구는 물론 대학생 형들과도 잘 어울리는 사교성마저 남다른 아이였다.


사람 사는 일에 그만하면 됐다 싶어 공부하란 소리, 학원 다니란 소리 하지 않았다.

자주 게임을 하고 있거나 늦잠을 자고, 친구하고 어울리느라 늦게 들어와도 내버려두었다. 수학은 물론 영어 성적이 20점대를 맴돌아도 다그치지 않았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것이므로. 허나 16살, 코끼리라는 단어조차 선뜻 떠올리지 못할 정도란 걸 직면한 그 날, 큰아들에 대한 충격과 한탄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고심을 거듭했다. 머리 굵은 사내아이가 당장 잔소리 한 마디에 달라질 리 없단 걸 연년생 두 아들 16년 키우며 터득한 이치다. 학원에 집어넣는 일은 더더욱 못할 일이었다.


마침내, 아들에게 영어공부 좀 하라고 다그칠 바엔, 엄마가 직접 하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각오는 동네 카페의 프랑스어 왕초보 모집에 꽂혔고, 내 나이 마흔여섯에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 사연은 그래서였다. 여봐라, 엄마도 공부하노라  생색내고, 자극을 주고자하는 허위도 없진 않았다. 큰 아들 때문에 시작한 프랑스어 공부가 적성에 맞고 즐겁기까지 할 줄은 누가 알았으랴. 이 모든 일은 돌연 큰아들 덕분이라는 미담으로 끝을 맺었다. 지인들은 나의 시작과 도전에 박수를 보내면서 내심, 덩치는 나라 구할 장군감인 큰아들의 영어 실력에 혀를 내둘렀다.


<영어 공부 안하는 16살 큰아들이 엄마 생일에 그린 파리 에펠탑>

           


우리 집 부엌 벽에는 세 개의 에펠탑이 걸려 있다.

삼형제가 생일에 그려준 그림 선물이다. 큰아들의 에펠탑은 구도나 표현이 정교하고 작은 아들은 세밀하지만 로맨틱하고 막내딸은 초등학생 소녀답게 제멋대로 휘어져 있다. 엄마가 프랑스어 공부 열심히 해서 파리로 여행까지 다녀오라는 응원도 담았다. 세 개의 에펠탑 그림을 볼 때마다 내 꿈은 자란다. 50대에는 프랑스에 가서 어학연수를 하며 현지에 살아보기이다. 친구가 파리에서 남편과 식당을 하며 살고 있으니 비빌 언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 번 가면 중독되고 만다는 스페인이나 유럽 여행도 도전해 볼 수 있다.


50대가 된 나는, 어느 날 유럽의 어느 마을 카페에서 모닝 라테를 마시고 있겠지... 이제 더 이상 큰아들의 기막힌 영어성적은 내 고심거리가 아니다. 아들은 아들의 길을 가겠지. 나는 나의 길을 가면 된다. 오늘도 저녁 준비로 된장찌개를 끓이며 벽에 붙여 둔 포스트 잇 문구를 소리 내 읽는다.



 “J'ai de la chance ! (나는 운이 좋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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