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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몰포스 Jun 21. 2020

바야흐로 꼴부리가 제철

팔남매를 홀로 키운 엄마가 차려 준 여름 저녁 성찬, 꼴부리 된장찌개

<바야흐로 꼴부리가 제철>     

                                                                                                                                임정희            



종종 ‘꼴부리’ 꿈을 꾼다.  

강 물 속에 엎드려 돌을 뒤집으면 돌바닥에 크고 작은 꼴부리가 바글바글하다. 손을 넣고 스르륵 끌면 꼴부리가 한 줌 그득이다. 산 속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하면 이런 심정일 게다. 자랑하고 싶어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무도 없다. 몇 번 눈을 깜박이는 사이 정신이 차려지고,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다. 내 손은 빈 손이다. 꿈이었다.       



꼴부리 꿈을 꾸고 나면 내 마음은 고향으로 달린다. 

학교가 끝나고 책가방을 빙빙 돌리며 제방 둑을 너머 강가로 내달린다. 옷 입은 그대로 물속으로 첨벙 뛰어든다. 시원한 물속에서 물장구를 치면 내 다리를 콕콕 쪼며 장난질하던 피라미들과 잡힐 듯 천연덕스럽게 엎드렸다가 순식간에 눈 앞에서 사라진 뚜구럭지가 못내 아쉬운 나는, 초등학교 4학년 11살이다. 아이들 자라는 거야 저 타고난 복에, 자연에 내맡겨 뒀던 시절, 강은 우리의 품이자 세상이었다. 언제든 달려가 실컷 놀 수 있었고 저녁꺼리로 꼴부리까지 내어줬다. 덕분에 우리는 가난하지도 배고프지도 않았다.       



      <사진 출처: MK뉴스 2014 년 6월 25일 기사에서 발췌>




꼴부리는 경상도 사투리다. 

표준말은 올갱이, 다슬기로 나선 모양의 껍질을 가진 연체동물로 민물에 산다. 돌 밑에 숨어 지내다 밤이 되면 돌 위로 기어 나오는 야행성이다. 낮에는 아이들이 놀이 삼아 수고롭게 돌을 일일이 뒤져가며 잡았고, 어른들은 본격적으로 밤에 손전등을 들고 가서 전용 유리판으로 물 속을 들여다보며 돌 위에 수북이 기어 나온 꼴부리를 잡았다. 환한 낮은 어렵지만 어두운 밤은 쉽게 잡힌다니, 우리 사는 일과 같다고 어렸을 때도 생각했다. 껍질 속 살은 푸른데, 이 살만 발라내 부추를 넣고 국을 끓여 해장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꼴. 부. 리. 라고 발음 해보면 꽈배기처럼 돌돌 말린 속살이 매끄럽게 입안에 쏙 들어올 듯 입 안에 침이 고인다. 꼴부리 된장찌개 냄새가 난다. 이름 그대로 꼴부리에 된장을 더하면 되는 음식이다. 이맘때 저녁이면 밭일을 마친 엄마가 머릿수건도 풀지 못한 채 바로 쌀을 씻고 가마솥에 군불 때 밥을 짓는다. 우리가 잡아와 수돗가 고무다라에 넣어 둔 꼴부리는 치대 씻는다.  짜박 자박, 꼴부리 씻는 소리가 샘가를 넘어 집안 가득 울려 퍼진다. 가마솥에서는 밥 뜸 들여지는 냄새가 가득 퍼지면 된장을 서너 숟갈 푹 넣어 풀고  ‘다닥닥닥닥’ 도마 위에서 칼 손잡이 끝으로 마늘 몇 개를 다져 넣고 고춧가루 조금 넣은 국물이 든 누런 양은 남비는 아궁이 잔불 위에서 펄펄 끓어오른다. 씻어둔 꼴부리가 껍질째 들이부어진다. 


짜라라아-악....

꼴부리들이 끓는 된장찌개 속으로 투하되면 뚜껑 닫지 않고 다시 한소끔 끓인다. 밥을 짓는데서 부터 된장찌개를 끓이기까지 엄마는 어찌 그리 유연하고 빠른지 도와주려고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다. 밥 냄새가 한 풀 퍼지고 나면 꼴부리 된장찌개 냄새가 퍼지니 저녁이 다 돼간다는 신호다.  하루 종일 학교로 강으로 쫓아다녔던 우리는 새삼 허기가 졌고 이내 입속엔 침이 고였다. 마루에  동그란 양은상을 펴고 수저를 놓고 각자 밥그릇에 밥을 푸고 꼴부리가 상에 오르기만을 기다린다. 꼴부리는 너무 오래 끌이면 꼴부리 살이 졸아들고 너무 안 끓이면 된장이 몸에 베지 않아 쓰금하다. 딱 간이 적당히 베면서도 살이 쪼그라들지 않을 정도로 끓이는 일은 순전히 엄마의 감이다.      



고대하던 꼴부리 된장찌개 남비가 밥상 위에 오르고 팔남매도 둘러앉았다.

꼴부리 된장찌개 남비 하나 가운데 두고 여덟 개의 밥그릇을 줄줄이 놓고 숟가락을 쉴 새 없이 남비 안에 넣었다 뺐다하며 꼴부리를 까먹기 시작한다.  앞산 노을은 지는 게 아쉬운 듯 붉은 기염을 토해내고 타오르고 있었고, 집 앞 논에서는 개구리가 놀러 나간 자식들 불러 모으듯이 ‘굴개굴개굴개’ 울었고 이에 질 새라 우리들이 꼴부리를 까먹는 소리도 재즈음악처럼 불협화음속의 조화를 이루었다. 꼴부리가 있는 여름저녁은 그렇게 소리마저 다채롭게 어우러졌다. 꼴부리를 껍질째 끓인 된장찌개를 먹을 때 필요한 도구는, 억세고 길어 귀신도 뚫지 못한다는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꺾어 온 가시로 발라내 먹는다. 탱자나무 가시를 꼴부리 눈 달린 머리 쪽 을 찌른 다음 살살 돌려내면 껍질의 결을 따라 살이 따라 나온다. 가시 끝에 매달린 작은 소라모양의 꼴부리 살을 입 안에 쏘옥 집어넣으면 온 몸에 베인 된장 맛까지 입 안에 씹혔다. 밥과 꼴부리와 된장이 조화를 이루는 순간이다.      



그 시절 엄마는 나같이 자식 여덟 혼자 키우는 과부도 여름엔 한숨 돌리라고 꼴부리가 있는 갑다라고 했다. 

반찬값도 안 들고 아이들이 잡아와 어른은 끓이기만 하면 되니 이런 선물이 어디 있냐고. 사람의 일을 자연이 돕는 거라고. 혼자 농사짓고 안동포 짜는 과부, 딸린 자식이 여덟이니 그런 살림에 풍족할 날이 얼마나 되겠는가. 여름저녁만큼은 다른 반찬없이도 풍족했으니 감사의 마음이 들밖에. 자연의 맛에 어머니의 손맛이 더해진 꼴부리 된장찌개 한 남비는 엄마의 고단한 삶을 위로받는 여름날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손은 별로 안 가는 음식이지만 온 가족이 밥 두 그릇을 배불리 먹어치우는 성찬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꼴부리 된장찌개는 갓 주워 온 꼴부리에 된장의 깊은 맛이 더해졋듯  엄마의 삶도 깃들어 더욱 그리운 별미가 되었다.        



10여 년 전 여름, 남편과 친정나들이를 했다. 

시골집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은 시각, 엄마가 집에 없었다. 혼자 사는 여든 다 돼가는 노인에게 필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라고, 더운 낮에 논에서 일하다가 쓰러지기라도 한 거라고 불행한 예감을 떠올리며 동네와 들녘을 차를 끌고 헤맸다. 길이 엇갈렸을지 모른다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11시가 넘은 시각, 엄마는 젖은 몸을 하고 나타났다. 

“니 꼴부리 된장 끓여 줄라꼬. 마이(많이) 기다렸나?” 

늙은 엄마는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꼴부리 주머니를 들어 올리며 찬란하게 웃었다. 서울서 내려 온 다섯 째 딸을 주려고 맛있는 꼴부리가 있다는 명당을 찾아 이웃 동네 강가까지 가서 잡아오느라 늦었던 거였다. 임신하면 꼴부리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지는 건 딸들의 공통된 증상이었다. 그 때 내 뱃속에는 셋째가 자라고 있었다. 꼴부리 된장찌개는 내게 세 개의 이음동의어다. 고향, 엄마, 꼴부리.      



꼴부리를 까먹던 그 날의 저녁처럼, 내가 사는 평창동 언덕배기에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바라보노라니, 그리움도 스며든다. 지금보다는 젊은 고향집 엄마가 밭일을 끝내고 머릿수건을 한 채 하늘색 대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 수돗가 다라에는 껍질이 매끈하고 반들거리는 꼴부리가 버글거리고, 힘 좋은 몇 마리는 샘가로 도망을 치는 중이겠다. 어느 새 엄마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짓는 밥 냄새가 퍼지면 장독대에 엎드려 된장을 푸겠다. 끓는 된장 물에 꼴부리가 ‘짜라라라악’ 부어지는 소리, 곧 꼴부리와 된장이 어우러져 내는 구수한 냄새와 끓는 소리가 겹친다. 몽환적인 노을 빛깔을 바라보며 알맞게 지은 밥알이 입 안에 씹히고 꼴부리 한 알 한 알 된장국물와 어울려 목구멍을 넘어가던 저녁밥은 오감에 영혼까지 채워줬던 가난한 날의 성찬이었다. 


잠들지 않고도 꾸는 꿈인가, 어릴 적 그 여름 저녁의 밥상이 펼쳐진 듯 행복해진다. 

맛은 기억을 넘어 영혼을 잠식한다. 

바야흐로 꼴부리가 제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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