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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나무 May 11. 2024

공원을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셨나요?

이야기 작가 되어보기

『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 그림책을 처음 만난 날은 올해 3월 중순이다. 동네 책방 산책 프로그램으로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그림책서점 <이루리북스>에 갔다. 이루리 대표는 책방 이야기와 함께 몇 권의 그림책과 함께 이 책을 소개했다. 글없는 그림책이라고 하면서 그림 몇 장면을 보여주었다. ‘인상적인 책이다’ 라는 생각과 함께 기억 속으로 묻어두었다. 도서관 그림책 강좌에서 강사님이 이 그림책을 활용하여 이야기 만들기 활동을 진행하여 반가웠다. 제목에 나오는 붉은 물고기가 넓은 공원을 호수처럼 자유롭게 헤엄친다. 이 물고기는 전지적 작가이거나 관찰자처럼 공원을 자유자재로 다니며 공원 전체를 관찰하거나 인물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공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보인다. 한 장면만으로 끝나지 않고 그 사람들의 다음 행동들이 다음 페이지에 그려지고 있다. 별 생각없이 그림만 보면 너무 정신없고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임이나 무성영화처럼 그림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실제로 그림책의 장면이나 인물을 활용해서 이야기를 만들 시간이다. 대충 방법을 설명하자면 이런 과정을 거친다. 먼저 그림 부분을 전체적으로 보여준다. 글이 없는 그림책이라 읽어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게 맞다. 다음에는 마음에 끌리거나 눈에 띄는 인물을 선택한다. ‘선택적 주의집중력’을 발휘하여 다른 인물들은 모두 배경으로 날려버리고 그 인물만을 따라간다. 가만히 귀 기울이고 집중해서 그 사람을 보면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어 고개를 끄덕인다. 때로는 왜?라는 의문이 생겨 다시 앞으로 넘어가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작가로서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제 나는 독자에서 작가가 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플루트를 연주하는 남자를 선택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짧은 시간에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그림책 표지

제목 : 소리를 모으는 연주자

그는 매일 그 곳에 온다. 아름드리 나무가 그늘을 만드는, 그 곳은 그의 독무대다. 오늘은 맑고 화창한 날씨에 바람마저 싱그럽다. 그는 먼저 눈을 감고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 강아지 소리, 재잘거리는 새소리, 바람이 살랑거리는 소리, 연인들의 속삭임, 매일 단골처럼 찾아오는 할머니의 한숨 소리까지, 그의 귀는 예리한 레이더처럼 모든 소리를 끌어 모아들인다. 그 소리에 담겨 있는 즐거움, 슬픔, 미세한 두려움의 떨림까지도 들으려고 한다. 충분한 소리가 모아졌다고 생각하면 그는 악기 가방을 연다. 그의 동작은 매우 정교하다. 급할 게 없다. 슬로모션이 돌아가듯 그의 동작은 매우 세심하고 느긋하다. 차가운 금속성의 촉감을 느끼며 부드러운 천으로 악기를 닦는다. 보면대를 세우고 악보를 펼쳐놓는다. 주위에서 비둘기 몇 마리가 걸어다니며 먹이을 찾고 있다.      


‘오늘은 무슨 소리를 불러올까?’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깊은 호흡을 한다. 이제 준비가 다 된 것이다.

그의 플루트 연주가 시작된다. 하지만 온갖 소리가 가득한 공원이라 그의 연주 소리도 하나의 배경처럼 흡수되어버린다. 그는 크게 마음 쓰지 않는다. 그의 플루트에서는 맑고 경쾌한 새소리가 흘러나온다. 새들이 먼저 반응한다. 새들이 하나둘 주변으로 몰려든다. 나무 위에도, 땅에도 새들이 귀를 기울여 그의 이야기 소리를 듣고 있다. 그의 연주는 이제 새들의 합창으로 바뀐다.      


새들과 공명하는 그의 연주에 키 큰 남자가 흥미를 갖고 다가온다. 이번에는 그 남자의 마음의 이야기를 연주한다. 남자는 눈을 지긋이 감고 그 이야기에 감응한다. 그 남자 주변으로 사람들이 다가온다. 그의 연주는 조금씩 변화하여 소리와 모양이 다르게 각자에게 다가온다. 전체적으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화음이 되어 공원 멀리까지 퍼져 나간다. 그의 연주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렀을 때는 빨간 물고기가 나무 곁에 서 있었을 즈음이다. 공원을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빨간 물고기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그에게서는 바다의 냄새와 함께 파도소리도 들린다. 물고기가 본 것, 들은 것, 다른 존재들을 만나면서 느낀 모든 것이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그는 물고기의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긴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보내주었다. 내면 깊숙이 뿌듯한 기쁨이 차올랐다.      


그는 오래 전부터 혼자 살고 있다. 생계를 위해 음악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공원에 나온다. 멋진 공연장에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연주하며 박수를 받던 시간도 이젠 예전 일이다. 저녁 해가 불게 물드는 노을로 바뀔 때까지, 사람들이 공원에서 모두 떠날 때까지 머무른 날도 많았다. 그가 세상 사람들과 조우하는 매일의 일상은 늘 이런 식이었다. 그 단순한 하루하루가 좋았다. 그의 외로움과 열망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그래서 혼자 있으나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느낌이 든다. 세상에 재능과 빛을 나누는 그만의 방식이다.      


그림책을 직접 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 썼기 때문에 실제 그림책과 조금 다른 점도 있다. 주인공이 생각보다 무척 젊은 남자였고 눈의 움직임이 많았다. 주변에 떠다니는 음표도 보였다. 그런 건 다 문제없다. 나만의 이야기 한 편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뒷부분에 작가가 직접 쓴 <플루티스트와 참새>와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신선했다. 또한, 강좌를 함께한 분들의 이야기 발표를 듣는 것도 재미있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각자 다른 이유로 각자 다른 인물을 주인공으로 선정하여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기 때문이다.      


이야기 만들기, 혹은 작가 경험하기 활동은 우선 많은 인물들 중에서 누구를 선택하느냐부터 모두 다르다. 같은 인물을 선택하더라도 인물의 배경 설정이나 이야기 전개 과정이 다 다르다. 각자의 삶의 경험이 다르고 생각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 그림책을 곁에 두면서 여러 인물을 바꿔가면서 이야기 만들기를 연습하면 재미있는 작가 경험이 될 것 같다. 뒷부분에는 작가가 쓴 7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이야기가 매달려 있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한 권으로 7권의 그림책을 읽는 것과 같다. 책을 읽는 독자들이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어 덧붙인다면 풍성한 포도밭이 될 것이다. 그림을 보는 재미, 이야기를 만나는 재미, 이야기를 만드는 재미를 듬뿍 선사해준 멋진 그림책을 만나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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