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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나무 May 21. 2024

노는 체질이 따로 있나?

빨간 날에도 시간표가 필요해

  

이제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지?

무엇을 하며, 누구와 보내지?     


퇴직 후의 인생 2막을 어떻게 할지 별다른 준비 없이 막연하게 자발적으로 은퇴했다. 그렇다고 고민을 많이 한 것도 아니다. 고민할 틈도 없이 내 스마트폰 일정표는 어느새 이것저것 들어차 있었기 때문이다.      


월~화요일 남편과 1박 2일 여행, 수~금요일까지 도서관이나 평생학습관 프로그램 참여하기, 주말에는 공동체 텃밭까지 일주일이 나름 알차게 채워져 있다.     


가끔 친한 사람들과 수다 모임도 하고, 퇴사한 친구들과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고, 틈틈이 책방 나들이도 한다. 시골에 홀로 계시는 친정엄마를 만나러 가는 시간도 따로 마련한다. 큰 힘을 들이지는 않지만, 가족들을 챙기고 내 몫의 집안일도 놓치지 않는다. 중간중간 자투리 시간은 수영, 골프 연습 등 운동 시간이다. 맨발 걷기나 탁구를 하며 땀을 흘리기도 한다.      


 ‘오늘부터 글쓰기’, ‘어른을 위한 그림책 독독’ 은 도서관 유목민에 합류한 내가 처음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평소에 좋아하던 것들이라 꽤 재미있다. 밤에는 챗 GPT로 전자책 쓰기, 그림책 줌(ZOOM) 특강을 듣는다. 인공지능, AI 등에 대해 조금 알고는 있었으나, 실제로 해보지 않아 거리감이 있었다. 이번에 도전한 AI 프로그램을 활용한 전자책 만들기 과정은 생각 이상으로 흥미롭고 재미있다. 낯선 프로그램이나 앱을 버벅거리면서 따라가다 보니 어설프고 거북이걸음이다. 조금 맛보기식이지만 MZ세대들의 무기를 조금 훔쳐본 느낌이랄까? 제대로 하자면 창의적인 감각과 많은 시간 투자가 필요할 것 같다.     


이런저런 활동에 참여하면서 일정한 시간에 출근하듯 집을 나와서 다시 학생이 되어 새로운 배움과 만남을 하는 과정이 신선한 자극제다. 몸속에서 아드레날린이 즐겁게 뛰는 걸 느낀다. 빈틈없이 꽉 찬 일정표대로 하루를 마무리하면 기분이 좋다. 내심 흐뭇하고 자랑스러운 느낌을 즐긴다. ‘내가 좀 부지런히 살고 있구나.’ 안심이 된다. 프로그램에 출석도 잘하고 과제도 열심히 한다. 강사님이 좋아하는 유형의 수강생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평생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16년간의 학창 시절, 바로 시작된 직장 생활 35년, 직장을 접을 때까지 학교라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했다. 학교 시스템이 가진 그 모든 특성을 그대로 체화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움직이고, 정해진 프로그램을 따르고, 정해진 업무들을 한다. 해야 할 것에 충실해야 한다. 그 시스템이 나에게 맞는지 따지기 전에 그 틀에 나를 맞춰가며 살아왔다. I want 나 I like 보다는 I must로 살아온 나는 언제나 부지런히, 열심히 살았다. 직장에 다닐 때도 이것저것 도전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한번 시작한 일은 누구보다 열심히 하려 했다. 퇴사 후에도 그 리듬을 놓지 못하고 도서관이나 평생학습관을 학교 삼아 다니고 있다. 학교의 시간표처럼 빨간 날에도 시간표가 필요가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가만히 나를 들여다본다. 드디어 나의 상태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열심히, 부지런히 병’이다. 

‘항상 부지런하고 성실해야 먹고살아, 게으름 피우면 안 돼. 넌 열심히 살아야만 해. 그냥 놀면 큰일 나.’ 

누가 강제로 그렇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일하지 않고 노니까 더 성실히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닦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나마 괜찮은 점은 하고 싶었던 것에 집중하여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과 시간표를 내가 짠다는 것이다.      


세상에 노는 체질이 따로 있나?

해변트래킹@여행하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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